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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질책 / 루쉰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6. 5. 4. 18:32

개의 질책 / 루쉰

 

꿈에 좁은 골목을 걷고 있었다. 거지처럼 옷이 남루했다.
개 한 마리가 뒤에서 짖어댔다.
나는 거만하게 돌아보며 크게 꾸짖었다.
“닥쳐, 가진 자에게만 알랑대는 개 같으니!”
“헤헤!” 그는 웃고서 이어 말했다. “천만에, 부끄럽게도 사람보다는 못하다고.”
“뭐야?” 나는 화가 났다. 극단적인 모욕이라고 느꼈다.
“부끄럽게도 난 아직 구리와 은도 구분할 줄 모르고, 무명과 비단도 구분할 줄 모르고,
관리와 백성도 구분할 줄 모르고, 주인과 종도 구분할 줄 모르고, 또…….”
나는 도망쳤다.
“잠깐! 우리는 더 할 말이 있는데…….” 그는 뒤에서 큰 소리로 나를 붙잡았다.
나는 곧장 도망쳤고 있는 힘껏 뛰어 꿈속을 빠져나오니 내 침대였다. - 루쉰(1881~1936)


중국의 작가 루쉰은 <광인일기> <아Q정전> 같은 소설로 잘 알려져 있지만 한시, 신시, 산문시 등 다양한 형식으로 시를 쓰기도 했다. 루쉰의 글을 읽으면서 당대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식과 필력에 감탄하다가도 이따금 그의 모순된 내면이나 인간성을 엿보게 될 때가 있다. 개와 고양이를 싫어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온 그가 이 시에서는 개에게 풍자의 칼자루를 넘겨준다. 산문시집 <들풀>에 실린 24편의 시 중 9편이 꿈 이야기로 되어 있다. 꿈에서 ‘나’는 짖어대는 개를 향해 가진 자에게만 알랑댄다고 꾸짖는다. 그런데 개의 답변에 ‘나’는 곧장 도망치고 만다. 구리와 은, 무명과 비단, 관리와 백성, 주인과 종을 구분할 줄 모르기에 개가 사람보다는 못하다는 말은 모든 걸 분별하고 서열화하는 인간의 태도를 겨냥한 것이기 때문이다. 개를 향한 비난의 화살이 바로 인간에게 돌아와 꽂히면서 전통적 우화의 위계가 전복된다. “개만도 못하다”는 말에 들어 있는 인간중심주의 역시 통렬하게 깨진다. 루쉰의 <들풀>을 시로 인정하지 않는 학자들도 있지만, 나는 보들레르나 투르게네프의 산문시처럼 루쉰의 산문시가 꿈이나 알레고리 등의 장르적 혼종성과 산문적 호흡을 통해 중국시의 현대성을 선취했다고 생각한다. 소설에서보다 인간 루쉰을 좀 더 내밀하게 만날 수 있다는 것도 그의 시를 읽는 즐거움 중 하나다.

[경향신문 나희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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