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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억 광년의 고독 / 다니카와 슌타로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6. 4. 27. 06:13

이십억 광년의 고독 / 다니카와 슌타로

 

인류는 작은 공(球) 위에서
자고 일어나고 그리고 일하며
때로는 화성에 친구를 갖고 싶어 하기도 한다

화성인은 작은 공 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혹은 네리리 하고 키르르 하고 하라라 하고 있는지)
그러나 때때로 지구에 친구를 갖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것은 확실한 것이다

만유인력이란
서로를 끌어당기는 고독의 힘이다

우주는 일그러져 있다
따라서 모두는 서로를 원한다

우주는 점점 팽창해간다
따라서 모두는 불안하다

이십억 광년의 고독에
나는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 다니카와 슌타로(1931~2024)


<우주소년 아톰> <하울의 움직이는 성> 주제가의 작사자로 널리 알려진 다니카와 슌타로는 스물한 살인 1952년에 첫 시집 <이십억 광년의 고독>을 출간했다. 패전 이후 일본에 만연한 사회적 불안과 냉전의 공포 속에서 시인은 동심의 상상력으로 ‘우주적 고독’을 말한다. 인류가 살아가는 지구도, 가까운 행성인 화성도 거대한 우주의 “작은 공”에 불과하다. 시인은 화성을 친구의 기척처럼 아주 가깝게 느낀다.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 같은 낯선 언어로 지구의 친구를 부르는 화성인의 목소리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만유인력’을 “서로를 끌어당기는 고독의 힘”이라고 새롭게 정의한다. ‘지구가 너무도 사나운 날에는’이라는 시에서도 시인은 기압이 낮고 바람도 강해지는 지구의 사나운 기후를 벗어날 탈출구를 “붉은색이 따뜻한” 화성에서 찾았다. 우주는 일그러져 있고 점점 팽창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그 불안을 깨뜨리는 행위로 재채기를 한다. 재채기라는 사소한 행위가 우주의 기운과 흐름을 바꾸어놓는다. 까마득한 벼랑 아래로 던진 돌 하나가 저 아래서 탁, 하고 소리를 내는 것처럼, ‘나’의 재채기 소리 역시 이십억 광년의 고독 속으로 울려 퍼졌을 것이다. 

[경향신문 나희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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