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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 / 송정민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6. 4. 7. 13:42

화해 / 송정민

 

꽃가루가 날리는 계절에는

모든 것이 날아다닌다

 

뭐라도 잡고 싶어

그냥 아무거나

 

근육을 아무렇게나 뻗어보지만

움직이는 것이 움직이는것을 잡기란 얼마나 힘든지

 

의자를 빼놓고 잠들지 마

영혼이 의자에 앉아서 자는 제 얼굴을 쳐다본대

 

나는 의자를 책상 바깥으로 빼놓고 불을 끈다

잔인하게 쫓아냈던 그 아이가 의자에 앉을 수 있게

 

꿈에서 애쓰면 어깨가 뭉친다

꿈에서 울면 베개가 젖는다

분명 꿈이 새고 있어

 

네 방에서 장미 향이 진동해 진짜 장미 냄새 말고 장미 향

의자에 앉은 아이가 콧등을 구기며 말한다

알아? 장미 향은 절대 장미 냄새가 될 수 없어 

아이의 작은 등이 나를 인도한다

안개 속으로 들어갈수록 안개가 깨진다

 

사건도 이유도 결말도 사라진 채 느낌만 남은 이야기들

나의 몸으로 들어와 나의 자세를 만든 말들

 

젖은 눈을 뜨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나, 둘, 셋

눈을 뜨면 아이가 앉아 있을 것이고

이젠 내가 정확한 눈으로 아이를 바라볼 차례

 

아직도 죠스바를 좋아하니?

시뻘건 혀를 검은 입술 안에 숨기고 땅따먹기 하는 친구들을 바라보니?

여전히 상어가 영어로 죠스라고 알고 있니?

 

나는 이제 내 장례식을 상상하지 않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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