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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예술디카시 & 시 공부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6. 4. 6. 06:51
토요 예술디카시 & 시 공부

오늘은 최현우 시인의 디카시와 김해인 시인의 시를 텍스트로 감상하겠습니다.

※ 말미에 링크한 내용은 '데일리 경남'에 연재하는 '예술디카시 산책 (제10편)'입니다. 우리 밴드에 실렸던 내용을 재 수록한 것입니다만, 댓글이 많이 달리면 광고를 따는데 유리하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동행의 본질
가까워 보이기도 하고
멀어 보이기도 하는

나란히 선다는 것은

각자의 흔들림을
각자 온전히 감당하는 일

_최현우



위 디카시는 동행의 본질에 대한 진술인데 동행이란, 같은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해 가는 가능성의 공간, 서로를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진리에 이르는 길임을 말하고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너무 가까우면 단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존경심이나 신비감, 긴장감이 사라져서 선을 넘게 되고, 너무 멀리 있으면 남이 되는 관계이므로 그 적당한 거리에서 함께 가는 지혜가 동행의 핵심임을 문면에 감춰놓고 있다.

오늘 최현우 시인은 “가까워 보이기도 하고/ 멀어 보이기도 하는/ 나란히 선다는 것은”이라는 화두로, 가깝지만 서로 다른 색상의 다리 두 개를 전경으로 제시하면서 인간의 관계론을 전개하고 있는데, 다리를 보는 위치에 따라서 처음에는 멀어 보이던 사이가 갈수록 가까워 지다가 나중에는 합쳐진 듯한 착시가 오지만, 강을 건너는 동안 다리의 사이는 변함 없이 동일하다. 시인은 그 왜곡현상을 “각자의 흔들림을/ 혼자 온전히 감당하는 일”이라고 한다. 깊은 심미안이며 독자에게 사유의 큰 공간을 제공한다. 장사익의 ‘섬’이라는 노래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는 하나라고 건배를 하면서도 등 기댈 벽조차 없다”라는 구절이다. 인간사 모든 문제의 최종 선택은 개인의 몫이며 그것은 자기의 등에 지고 갈 수밖에 없다라는 뜻이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민해경의 노랫말과도 겹쳐진다.

‘고슴도치 사이’라는 말이 있다. 고슴도치는 날이 추우면 서로에게 다가가 보지만, 너무 가까이 가면 서로의 가시에 찔려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여 함께 가는 일이 동행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관념이 아니라 실체의 세계다. 인생 자체가 “이것이다.”라고 완성하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 앞에 놓인 온갖 문제들을 경험하면서 얻는 지혜와 사람과의 관계를 가꾸어가는 여정이기에 그렇다는 뜻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춥다고 뜨거운 난로를 안고 있을 수 없듯,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절묘한 거리를 가늠하는 기술이 좋은 관계를 지속하는 힘이다. 쇼펜하우어의 말대로 “거리 두기에 실패한 관계는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라는 사실은 우리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일일 것이다.

예술디카시를 가끔 오해하는데, 프로작가의 사진처럼 사진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예술성이 크다면 굳이 디카시로 쓸 필요가 없다. 사진예술의 독립성을 살리면 된다. 우리가 추구하는 예술디카시의 사진은 시인의 깊은 시선이 느껴지는 선택과 집중이다. 기교를 넣지 않아도 시적 문장과 합쳐졌을 때 의미가 더 크게 살아나는 형태다. 무엇을 찍은 사진이 아니라, 그 사진을 통하여 “시인은 어떻게 말하는가?”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아무나 찍을 수 있는 흔한 장면보다는 깊게 응시한 특수한 대상을 선택하여 찍은 사진과 그것을 설명하거나 묘사한 문장이 아니라, 사진에서 떠오른 어떤 심상(이미지)을 가져와서 자기 진술(철학)을 담았을 때 살아나는 작품성이다. 예술디카시는 사진과 시적 문장의 적당한 거리를 둔 동행이 필요하다.






김해인


나는 머리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머리가 없이 그냥 나무속으로 쏙
들어가 버리면 사후세계는 누가 책임 지나?
머리가 없는 나를 동반자인 망치가 제대로 두드릴 수는 있겠나?
머리가 없다면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를 그 누가 잡고 건져줄까?
이런저런 고민거리가 줄어들어서 참 다행이다
인생이 한 점이라면 나무에 박힌 나 역시 의미 있는 한 점으로 볼 수 있어 참 그럴 듯하다
나는 때리면 때릴수록 복수 대신 집으로, 의자로의 변신을 꿈꾸는 평화주의자이자 실리주의자이다
깊이에 따라,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가는 곳에 따라 패턴이 달라지니 나름 패셔니스타라고 부르지 않겠나? 아무튼
나는 탕탕거리며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다.



「못에 관한 명상」으로 고백성사를 한 고 김종철 시인은, 함부로 못을 박았던 자신의 지난날과 휘어진 못을 뽑아야 하는 과정의 아픔, 그리고 못이 뽑힌 자리에 난 상처를 보면서 회한에 관한 시를 썼다면, 위 김해인 시인의 못은 “때리면 때릴수록 복수 대신 집으로, 의자로의 변신을 꿈꾸는 평화주의자이자 실리주의자”적 유용성에 관한 시다. 또한, 위 시는 주강홍 시인의「망치가 못을 그리워할 때」라는 시와도 분위기가 겹친다. 김해인 시인은 긍정주의라는 사실이 위 시 곳곳에서 드러난다. 재미있는 부분은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가는 곳에 따라 패턴이 달라지니 나름 패셔니스타라고 부르지 않겠나?”라고 한다. 못의 변신이고, 뛰어난 못의 패션 감각을 찾아낸 시안(詩眼)이다.

김해인 시인은, 때려서 박아야 하는 ‘망치’의 이미지를 가져와서 못처럼 뾰족한 시인 자신을 구원해 줄 멘토로 치환시킨다. 못을 박아야 할 시간이지만 힘에 버거워하거나 우유부단하여 망설이고 있을 때, 죽비로 내리치듯 힘 있게 내리칠 수 있는 '망치'라는 멘토가 있어야 "성공한 삶이 될 수 있다"라고 한다. 삶이란, 혼자서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다. 앞에서 이끌어주는 멘토가 있을 때 나의 성공도 빨리 오고, 나도 남을 도울 수 있는 선한 영향력도 생긴다. 혼자의 힘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려면 부축하는 나도 일어설 수밖에 없으므로 멘토는 남에게 도움을 주지만, 동시에 나 자신도 성장하는 일이다. "나는 머리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머리가 없이 그냥 나무속으로 쏙/ 들어가 버리면 사후세계는 누가 책임 지나?"라는 결론을 먼저 제시하고 있다. 생각 없이 세상을 살다가 저 세상으로 간다면 그 후에 펼쳐질 불확실한 일들에 대한 고민도 읽힌다. 그러나 나를 아직 필요로 하는 곳엔 "탕탕거리며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하는 기개는 청년이다. 생각을 청년처럼 하면 시도 몸도 자꾸 젊어진다.

성경을 쉽게 풀어서 번역한 '메시지 성경' 전도서 12장 11절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지혜로운 이의 말은 우리에게 제대로 살라고 촉구한다. 그 말은 잘 박힌 못처럼 인생을 붙들어 준다.” 인생은 독불장군처럼 자기 고집대로 살아가면 남의 배척을 받거나 결국 그 인생은 실패한다. 그러므로 나의 사고방식과 행동 패턴까지도 바꿀 수 있는 멘토를 만난다면 성공한 삶이라는 뜻이다. 뾰족한 못처럼 남을 부지불식간에 찔러 피 흘리게 하거나 내 주머니 속에 감춰봐도 송곳처럼 고개를 내미는 못을 제자리에 박아주는 멘토, 그것은 책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최고의 멘토는 신이란 뜻이다.

글_이어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