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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데서 온 묵독이다 -봄맞이꽃 / 정혜숙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6. 4. 6. 06:47

먼 데서 온 묵독이다 -봄맞이꽃 / 정혜숙

 

사기 접시에 담겨있는 맑고 흰 꽃의 말
손대면 부서질 듯, 먼 데서 온 묵독이다
묵독에 귀 기울이다
잠시 균형을 잃었다
소문도 기척도 없이 이울어가는 봄날
네 말은 내게로 건너오지 못해서
서녘의 간찰이 되었나
차마 읽지 못한다
(시조집 ‘거긴 여기서 멀다’, 책 만드는 집, 2022)

[시의 눈]
계절이 이울 때 쯤 관절을 펴고 은밀한 갈망으로 얼굴을 드러내는 꽃이 있다. 인기척하며 반갑다 손 내미는, 맑고 숙명한 내면을 터트린 채 고분고분 다가오는 꽃의 행보를 누가 마다할까? 느즈막에 봄 하늘을 수정체에 담고 좀더 느즈막까지 봄날을 누리고 싶은 꽃의 갈망이 투명하게 비친다. 봄아지랑이 타고 너울너울 서녘 하늘 오르려는지 하얗게 벌어진 꽃잎이 날개를 편다. 봄맞이꽃이다. 시적 주체는 봄맞이꽃을 ‘먼데서 온 묵독이다’라 은유해 낸다. ‘봄이 왔답니다’ 한 걸음 늦게 봄소식을 알리는 이 새삼스런 밀어, 싫지가 않다. 오히려 살가운 친밀감이 쑤욱 치솟게 한다. 꽃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고 있다. 아니다. 아예 묵독으로 소통하고자 한다. ‘묵독에 귀 기울이다/ 잠시 균형을 잃었다’에서 자연의 문맥을 읽는 순수서정과 순간의 압축성을 동시에 감지케 된다. 하지만 눈으로 읽는 꽃의 밀어는 지속적 시간성을 보장받지 못한 채 묵독의 시간을 거둔다. ‘서녘의 간찰이 되었나/ 차마 읽지 못한다’ 이 시적 화법은 짙은 아쉬움을 남긴다. 생성과 소멸을 겪는 꽃은 위로와 갈망이며 오묘한 미학이자 어쩔 수 없는 그리움과 아픔이다.

 <광주매일신문 윤삼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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