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외워버린 편지 / 장이지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6. 4. 8. 13:04

외워버린 편지 / 장이지

 

편지를 태우기 전 거듭 읽는다 당신이 부탁한 대로 거듭 읽어 외운다 편지는 불타고 재와 연기가 난무한다 매캐한 위치에서 홀로 나는 당신을 이해해보려 하지만 당신은 내 곁이 아니라 내 곁에 있다오, 나의 당신, 귀 안에 느껴지는 당신의 필압, 나는 당신의 편지를 거의 외우다시피 한다 타버린 편지는 난분분히 어두운 목소리 되어 창백한 해를 살라먹는다 이 어두워가는 세계로 당신은 삼켜진다 귀 안으로 흘러드는 잉크, 귀 안의 독, 귀안의 잇자국, 나는 당신 목소리만큼 무거운 당신의 필압을 느낀다 곁이 아니라 당신은 내 안에 있다 심장을 누르는 보라색 필기체

[장이지 '편지의 시대' 창비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