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거짓말 / 이성룡
봄날 늦은 아침
시장에 다녀온 아내가
볼록한 시장바구니를 내려놓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시장에 아무 것도 없더라고
푸른 고등어 몇 마리와
꼬막 주꾸미 콩나물 한 움큼
무와 파를 무작위로 꺼내면서
무슨 놈의 시장이
먹을 게 하나도 없더라고
연신 구시렁거린다
시장은 도대체
내 착한 아내에게 무엇을 숨겼던 것일까
(시집 ‘오래된 부부’, 밥북, 2025)
[시의 눈]
시장, 다닥다닥 좁은 가게가 즐비하고, 비좁은 거리에 장 보러 나온 장객들로 부산한 풍경이 그려진다. 기웃기웃 손님들끼리 부딪히고 발등 밟고 밟히는 일이 허다히 일어나는. 물건 홍보, 호객 및 흥정하는 소리로 떠들썩하는 이 공간은 살아있음을. 생명력의 꿈틀거림을 확인하는 장소로 기억된다. 동네 사람이나 지인들을 만나게 되면 정감 넘치는 대화와 정보도 나눈다. 시장은 그래서 플랫폼 기능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먹거리·볼거리도 풍부한 삶의 공간이다. 손님의 발길을 불러모으기 위해 콘텐츠를 잘 구비해야 한다. 싸고 품질 좋은 믿을 만한 상품들을 진열해 구매력을 북돋워야 한다. 인간의 냄새가 자욱한 시장은 ‘감성 여행에 딱이다’ 싶은 그런 공간이다. ‘시장에 다녀온 아내가/ 볼록한 시장바구니를 내려놓고/ 푸념을 늘어놓는다’의 언술에는 일종의 모순이 묻어있다. 장바구니가 제법 볼록하도록 장을 봐왔으면서 무슨 푸념일까? 고등어, 꼬막, 주꾸미, 여러 채소류까지 곁들여 사왔으면서. ‘무슨 놈의 시장이/ 먹을 게 하나도 없더라고/연신 구시렁거린다’의 장면은 무얼 말함인가? 입맛 까다로운 짝꿍에게 빌미를 주지 않으려는 연막작전은 아닐까. 착한 아내에게 시장은 도대체 무엇을 숨겼는가 되묻는 화자의 모른 척 대응 또한 해학적이다. ‘부창부수(夫唱婦隨)’다.
<광주매일신문 윤삼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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