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지복 / 지연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6. 3. 18. 14:27

지복 / 지연

 

나는 가끔 부끄러워 구석진 바위에 머리를 박고 싶을 때가 있다 대개는 애매함에서 오는 것이다 흐리고 느린 마음은 두꺼비집 같아서 스스로 무너진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많은 가운데서도 구석을 좋아한다 먼지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다가 달을 본다거나 바람을 만진다거나 하는 것이다 달이나 바람이나 꽃은 스스로 골똘하나 그들은 낙낙하게 앉아 고개를 조금 끄덕이며 듣고 있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비 오는 날에도 꽃에 물을 주고 싶고 풀을 뽑고 싶고 매일 내 잡초를 뽑기 위해 일기를 쓴다 그러다가 이 풀도 어여쁘다 이것이 꽃일지도 모르지 나를 향해 귀 기울이는 빛과 함께 가만히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는 것이다 나는 내 정원에 오랜 장마에도 무너지지 않을 브끄러운 바위를 세우고 풀 비스무레한 것을 심기로 한다

[지연 '모든 날씨들아 쉬었다 가렴' 창비 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