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꽃은 / 윤제림
또 고개를 숙인다
허리를 굽힌다
할미가 해줄 게 없어
미안하구나
여자는
죽어서도 사과를 한다
딸에게도 같은 말을
벌써 여러번 했을 것이다
에미가 해준 게 없어
미안하구나
예수도 석가도 가끔씩은
기별도 없이 안 오는데,
저 노인은 올해도 왔다
-윤제림(1960-)
봄볕이 따사로우니 할미꽃 필 때가 되었다. 강원도 동강 강변의 바위 절벽에 자생하는 동강할미꽃이 개화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할미꽃은 산과 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나는 고향 뒷산 무덤가에서, 볕이 잘 드는 양지에서 자줏빛 할미꽃이 핀 것을 여러번 보았다. 할미꽃은 고개를 숙여 땅 쪽을 바라보는 듯하고, 허리가 꼬부라진 듯한 외양이다. 하얀 솜털에 싸인 모습은 백발의 할머니를 생각나게 한다. 그래서 할미꽃을 볼 때마다 쪽 진 머리에 비녀를 꽂았던 내 외할머니가 떠오른다.
시인은 쪼그려 앉아 할미꽃을 마주보면서 후손에게 해 준 것이 없어서 늘 편치 못하고 부끄러워하는 할머니의 마음을 읽어낸다. 딱한 처지를 헤아리지만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그 마음을 읽어낸다. 그러면서 우리네 할머니의 한없는 헌신과 사랑을 성스러운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아무래도 할미꽃은 천성이 모질지 못한 할머니를 닮았다. 할미꽃은 봄볕 같은 자애를 넘쳐나도록 베풀던 할머니를 빼닮았다.
[조선일보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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