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토요 예술디카시 & 시 공부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5. 11. 24. 11:26
토요 예술디카시 & 시 공부

오늘은 조재철 시인의 디카시와 문윤희 시인의 시를 텍스트로 공부하겠습니다.


인생 한 판

계란은
한계란 모자라서
위험하지만

삶은
한계란 없다


_조재철



오늘 디카시는 인생에 관한 풍유(諷諭) 한 판이다. 대문호 톨스토이의 ‘인생은 무엇인가?’에 나오는 예화를 많은 사람이 알고 있겠지만, 그 이야기로 디카시와 시를 감상해 보려고 한다.

인생은, 메마르고 위험한 광야를 지나가다가 달려드는 사자를 피하려고 우물로 뛰어드는 것과도 같다는 이야기다. 뛰어든 우물 중간 벽에 자라난 나무에 옷이 걸려서 바닥에 떨어지진 안 했지만, 아래를 내려다보니 우물 바닥에는 독사가 득실거리고 있고, 위를 보니 여전히 사자가 으르렁거리며 지키고 있어서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한 시간이 길어지고 배가 고플 때, 나뭇가지에 달려있는 꿀이 흐르는 벌집을 발견하고 허겁지겁 꿀을 핥아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흰 쥐와 검은 쥐가 연달아 드나들면서 나뭇가지의 밑동을 갉아먹는다. 흰 쥐는 낮을, 검은 쥐는 밤을 상징하며 시간이 지나면 결국 나뭇가지는 부러져서 인생은 끝난다는 비극이다.

그러나 조재철 시인의 위 디카시는, 인생이 비극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강렬한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 “계란은/ 한계란 모자라서/ 위험하지만// 삶은 한계란/ 없다”라고 했다. 그렇다. 우리는 깨어지기 쉬운 ‘인생’이라는 계란판 위에서 모자라는 그것을 채우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하나를 채우고 나면 또다시 채워야 하는 욕망이 끝없이 나타난다. 만족을 모른다. 만족(滿足)이라는 뜻은 우리 몸 전체에서 발의 복숭아뼈 정도까지 찬 상태를 말한다. 옛 선인들의 기막힌 혜안이다. 즉, 지극히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 상태가 만족이라고 한다.

첫 연의 ‘한계란'은 욕망이지만, 두 번째 연의 ‘한계란’은 인간 극복 의지의 다른 말이다. 우리가 겪는 고난이나 불행의 근원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손실 혐오감’ 때문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가 공짜로 10만 원을 내게 줬다면 기뻐해야 하지만, 내 옆의 사람에게는 100만 원을 줬다고 공짜 돈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나쁘다. 오히려 돈을 준 사람을 힐난한다. 당신은 10만 원 밖에 받을 수 없는 사람이기에 그것만 준 것이다. 자기가 살아온 삶의 결과물임은 모르고 100만 원 받은 사람과 차별한다고 원망한다. 그것이 열등감이고 '손실 혐오감'이다. 그런 사실을 못 깨달으면 행복하지도 않고, 성공할 수도 없다. 빈손으로, 공짜로 태어나서, 지금 가지고 있거나 영위하는 모든 것이 사실은 덤이다. 그러므로 지금 주어진 자리, 지금 숨 쉬고 살아 있다는 일 자체가 축복이요, 감사할 일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 그렇지만 현실이 힘들 땐, “왜 나만 이럴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당신보다 훨씬 힘든 사람이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다만 "삶엔/ 한계란 없다"라는 생각으로 세상을 헤쳐나가는 사람 또한 수없이 많다. 나는 어느 쪽 부류인가?

디카시를 쓸 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일은, 꽃 사진이나 자연을 찍은 사진보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가 스며있는 장면을 포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꽃이나 풍광을 베끼거나 복사한듯한 사진 말고, 시인의 시선이 담겨있는 사진과, 짧은 시적 문장에도 축약된 나의 이야기가 사진과 어우러져서 그 중심에 화자의 역할이 확실하도록 하는 작법이 예술디카시에서 권장하는 방법이다.



(泣)


문윤희


그녀가 그려 놓은 푸른 능선 따라가다 보면
겹겹이 닮은 골짜기
정령의 손끝으로 자란 나무숲
작은 집이 보인다

붉고 투박한 지붕 아래 사는 아이는
능선에 걸친 구름을
손아귀 양껏 집어 핥아 먹으며 달콤함에
깨알 소리를 낸다

땅 뿌리 뜯어 먹는 자로
거침없이 구름을 만지는 아이가 걱정된다
능선을 뜀박질하는 아이가 위태롭다
휘파람 불며 굴곡을 걷는 것이 속상하다

노송 그늘에 앉아
억겁을 꼬아 새끼줄에 돌려 넣던 내게
구름 한 점 쥐어다
입속에 넣어주곤 배시시 주근깨를 보여 준다

느낄 새도 없이 흐르는 눈물
애써 외면했던 그리움이 터져 나와
아이보다 더 작은 아이처럼 울어
마른 땅을 적신다

가을하고 늦밤,

나눠 먹던 구름 맛에
너는 가고 나는 남아
지키는 것으로 웃어야 하는 밤에
홀로 흐느낀다



읍(泣)이란 눈물, 혹은 울음을 뜻한다. 읍소(泣訴) 할 때의 그 읍이다. 문윤희 시인의 시에는 그런 울음이 들어 있다. ‘울음’은 자기 정화와 감정적 성숙에 이르는 통로이기도 하다. 우리가 휘파람을 불면서 살아가는 것 같아도, 톨스토이의 예화처럼 모두가 위태롭고 굴곡진 삶의 여정에 있는 존재다. 때로는 꿀처럼 ‘달콤함’에 환호도 하지만, 흰 쥐와 검은 쥐가 쉴 새도 없이 우리의 시간을 갉아먹고 있다. 또한, 달콤한 인생을 “느낄 새도 없이 흐르는 눈물"들이 사람 사는 일에는 있기 마련이다. 위 시에는 ”아이보다 더 작은 아이“의 울음이 있고, 행복한 시절과 이별의 외로움, 그리고 스스로를 지켜내야 하는 불안한 현실이 변증법으로 펼쳐져 있다. “그녀가 그려 놓은 푸른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겹겹이 닮은 골짜기”가 다람쥐 쳇바퀴처럼 나타난다. 내가 그려가고 싶은 데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위 시의 전반적인 태도는, 존재의 연약함과 소멸적 시학인 듯 하지만, 눈물과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이다. 그러나 그 외로움이나 눈물, 고통은 그녀 혼자만이 겪는 일이 아니라, 인간사 보편적인 일이므로 그것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자기 확장의 자양분으로 삼기를 바란다. 물론 소리 내어 흐느끼는 것은 감정의 배설이자 슬픔을 극복하고자 하는 철학적 자양분이다. 다시금 바라 건데 자기애(自己愛)를 통해 상처를 극복하고 정서적 전환과 진취적, 상향적(上向的) 의미의 시가 문 시인에게 많아졌으면 한다. 그러나 의미에 너무 치우치면 시가 진부해지고, 의미를 무시하면 공허해지므로 전경과 후경이 적절하게 합일한 시의 창출이 중요하다. 어려운 문제 같지만, 너무 어렵게도, 쉽게도 쓰지 말자는 이야기다.

“우리가 겪는 고통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다.” 그러므로 인간사 마음먹기에 따라서 극복할 수도, 주저앉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이 극복하지 못할 시련은 신이 우리에게 주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삶의 의미는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향한 나의 태도에 달려 있다." '빅터 플랭크'의 명언이다. 시인은 세상이 원하는 질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질서와 눈물 많은 사연들을 밀고 들어가서 그것들이 나의 친구가 될 때까지 다듬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우리의 보통 말을 동원하여 최상의 상태로 조립하는 서정의 연금술사이기 때문이다.

글_ 이어산

'글쓰기 공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랜 기다림 / 이채  (0) 2025.11.28
서커스 / 이동우  (0) 2025.11.26
싸움 / 고명재  (0) 2025.11.24
그루터기를 보며 / 박정호  (0) 2025.11.24
무서운 얼굴 / 김사인  (0) 2025.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