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를 보며 / 박정호
새들에게 가난하다 말하지 않는 것처럼
바위에게 답답하다 말하지 않는 것처럼
붙박인 나무를 보고 오라 하지 않는 것처럼
먼 길 가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서로서로 기대다가도 외따로이 나앉아
몸속에 나이테 같은 길을 내어가고 있음을
(시조시집 ‘마음 한 평’, 이미지북, 2025)
[시의 눈]
삼라만상, 그들은 제각기 존재 이유가 있다. 생명의 근거를 지닌다. 다들 고유한 형상과 독자적 개성으로 주어진 삶의 길을 자기답게 걷고 있다. 하늘을 보며 왜 푸르냐고, 오리를 향해 왜 뒤뚱뒤뚱 걷느냐고, 늘보원숭이를 보고 왜 행동이 굼뜨냐고 트집 잡을 일이 아닌 것이다. 밀림에 들어가 도대체 무슨 수목이 빽빽이 들어차 있냐고, 밑둥이 잘려나간 텅빈 그루터기를 보고 왜 여긴 헛헛하기 짝이 없느냐고 시시콜콜 따질 일이 못 되는 것임을. 마찬가지로 새들에게 가난하다 말하는 것은 실례다. 바위에게 참 답답도 하게 생겼네 말하는 것도 경우에 어긋난다. 묵묵히 한 자리에 붙박힌 채 사유에 잠긴 나무에게 오라 마라 간섭하는 것도 옳지 않다. 형형색색 각 대상들 이 애초 분리된 존재이나 관계의 연으로 맺어진 이상 서로 가능성의 실재로서 상호작용을 주고 받으며 서 있다. 서로의 존재론적 삶을 느끼고 알아가는 도정이 놀라운 깨달음의 시간인 것을 다들 체험으로 터득하고 있다. 비울 것 다 비우고, 자기 몫으로 딱히 주워삼킬 만한 무엇도 남아있지 않은 헛헛함의 그루터기, 하지만 길이 돌돌 말린 나이테를 보라. 그 또한 존재의 근거인 것을.
<광주매일신문 윤삼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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