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도리어 / 유수연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5. 6. 11. 13:39

도리어 / 유수연

 

고양이나 강아지의 울음을 따라 해도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이었다

 

사람이기에 사람의 일을하는 것을 슬픔이라고 불렀다

버리지 못할 슬픔을 사람의 꼬리라고 불렀다

 

건물에는 불이 꺼지고 켜진다

빈 침대가 생기고 사람이 사라진다

 

사람의 일과 동물의 일은 생명의 일로 같아 그런데 고양이나 강아지도 겪는 일을 사람만 요란하게 해내려 해

 

건물에는 불이 꺼지지 않고

벤치에 앉은 너를 안아보았다

 

빈 페트병처럼 곧 찌그러질 듯이 그러나 생각보다 비어 있지 않은 너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기로 했지만

다짐은 포옹을 버텨내지못했다

 

다정이 가장 아픈 일이 되었다

 

돌아오는 새해에 사람이라면 사람의 일을 잊지 말아야겠다 생각한 일은 새해를 넘기지 못했다

 

그림자 같은 고양이들이 꼬리를 묶고

사라지는 것을 본다

 

그림자 같음을 걷어내기위해

 

고장난 스위치처럼 너무 많이 깜빡인 눈꺼풀

너무 많은 침대가 생겨나고 있었다

 [유수연 '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 창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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