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전사다 / 이선애
전화(戰火)가 휩쓸고 간 우물가
어머니의 매운 손 끝에 당해 나뒹구는 잔해를 본다
널브러져 말라붙은 피 묻은 살점
텅 빈 소쿠리에 담긴 고무장갑
축 늘어진 패잔병들 항아리 속에 누워
고춧가루 붉은 약으로 상처를 싸매고 있다
구설의 화살촉에 맞은
내 가슴 속 상처도 보았는지
어머니는 물 묻은 거즈로
수 겹의 침묵으로 그것까지 동여매준다
승리마저 잔인한 우물가 전쟁
끝내 깊은 내상을 입고 쓰러진 어머니
눈 오는 저녁의 잠꼬대를 듣는다
폭설이 내리기 전 한 문장 한 문장
전쟁을 마무리하라는 전언.
(시집 ‘방울을 울리며 낙타가 온다’, 상상인, 2020)
[시의 눈]
평화가 숨 쉬는 산하, 넌지시 유월의 안경으로 내다보면 초연이 자욱하다. 갈라진 국토의 경계에서 핏발 선 눈으로 노려보며 가슴패기에 짙은 상흔을 남겼던 그 날의 성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동족 상잔의 비극적 무대에서 스러져간 한 맺힌 눈동자가 크로즈업 돼 그 사무침과 애절함이 가슴을 긋는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알려진 가곡이다. 이 가사처럼 전쟁의 결과는 깊숙히 상흔을 남긴다. 그래서일까. 유월에 읽는 시 역시 행간에서 화염이 피어오른다. ‘어머니는 전사다’ 제목 자체가 도발적이다. 아니 반전의식을 깔면서도 여차하면 한판 물러서지 않고 붙겠다는 항전의식과 전의를 내비친다. 싸움터는 우물가. 우물가는 마을 여인네들이 나와 물을 긷고 빨래하면서 온갖 이야기를 나누는 공론의 장. 좋고 궂은 이야기. 험담과 무성한 소문 퍼나르기가 허락된 공공장소. 불쑥 상처를 주는 말이 내뱉어짐으로써 무심코 던진 비수로 인해 전쟁이 벌어진다. 나뒹구는 잔해, 패잔병, 붉은 상처, 깊은 내상의 진술이 치열했던 전장을 암시한다. 폭설이 내리기 전 전쟁을 마무리하라는 메시지, 화해의 기대치이자 긍정적 치유와 위로다.
<광주매일신문 윤삼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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