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사람이 피는 것이다 려원(麗願) 산문집 중에서 / 한비아
서가에서 그녀의 책을 골랐다가 작가를 소개한 글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펼쳐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첫 문장은 이러했다.
햇살과 바람과 새와 꽃의 말을 받아 적기를 좋아합니다.
려원(麗願), <사람학개론을 읽는 시간> 작가 소개 중에서
그녀가 햇살, 바람, 새, 꽃의 이야기를 꺼집어내는 순간 정서적 동질감과 함께 강한 끌림을 느낀다. 나 역시 이미 그들이 들려주는 속삭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20대의 젊은 청춘시절, 정다운스님의 <사랑학개론>을 읽고 그 감칠맛 나는 표현에 무릎을 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사람학개론>인가?
사람학개론은 노동자 출신 시인으로 알려진 유기택의 시(詩)다.
꽃이 피는 게 아니라 나무가 피는 거지
눈이 오는 게 아니라 하늘이 오는 거지
무거워지고 있던 어떤 생각들이 몰리며
어쩔 수 없어 안이 밖으로 열리는 거지
사람들은 꽃이 피더라도 하지
한 번만 꽃이라고 말해주어도
나무나 하늘이, 우리 가까이 오는 거지
우리에게 와선, 한 뼘 훤칠해지는 거지
우리에게도 그런
사람이 사람을 다녀가기도 하는 것이지
유기택, 사람학개론
꽃이 피는 게 아니라 나무가 피는 거란다. 눈이 오는 게 아니라 하늘이 오는 거란다. 이 얼마나 심쿵한 표현인가? 껍데기, 어느 일부분이 아니라만 본질과 전부를 보라고 외치지 않는가?
작가는 자기 안의 것들이 피어날 때 사람은 꽃이 된다고 말한다. 그녀가 예시를 든 꽃들은 우리가 아침마다, 이곳저곳을 다니고 기웃거릴 때마다 마주하는 꽃 들이다.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노란 원복의 아이들, 출발하는 버스를 향해 엄마들이 일제히 손을
흔들자 노랑들이 피기 시작한다. 표범무늬 레깅스를 입은 여인이 공원을 향해 걷고 있다.
개나리들이 흐드러진 새봄의 길. 표범 여자가 개나리꽃 사이에서 피고 있다.
려원, <사람학개론을 읽는 시간
그녀는 말한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 바라보기만 해도 사소한 일상들이 꽃으로 뭉클
거리며 피어나고 있다고. 누구든, 어디든 우리 모두는 봄의 꽃이고 세상은 거대한
봄의 화관이라고. 때로는 사람이 피는 것이라고.
세상이라는 화관을 거니는 우리의 삶이란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일인가? 정작 우
린 그 일상의 행복을 얼마만큼이나 마음속에, 눈에, 손과 발에 담아 내고 있을까?
주변에 피어나는 무수한 사람꽃은 또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분명한 것은
때로는 사람이 피는 것이라 했으니...!
려원의 시선, 유기택의 시, 한비아의 공감이 겹겹이 포개져서,
읽는 사람의 마음속에도 꽃 한 송이가 살짝 피어나는 느낌이에요.
글의 주제와 흐름 요약
📖 1. 책 속에서 만난 인상적인 문장
- 한비아는 서가에서 우연히 려원 작가의 책을 집었다가, 소개 글 속 첫 문장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햇살과 바람과 새와 꽃의 말을 받아 적기를 좋아합니다.” - 그 순간, 자연과 이야기를 나누는 작가의 감수성에 강한 정서적 공명을 느끼게 되죠.
💬 2. 시의 인용 – 유기택의 〈사람학개론〉
- 유기택 시인의 시구 “꽃이 피는 게 아니라 나무가 피는 거지” 는 본질을 꿰뚫는 표현.
- 단순히 ‘겉’이 아니라 전체, 내면, 근원이 움직이는 것임을 일깨웁니다.
🌼 3. 일상의 꽃 – 려원의 글
- 려원은 일상 속 사람들—유치원 아이들, 손 흔드는 엄마, 공원 걷는 여인—을 **‘꽃이 피는 순간’**으로 묘사합니다.
- 일상의 스침 하나하나가 봄날처럼 반짝이는 생명감을 품고 있음을 보여주죠.
🌿 4. 한비아의 성찰과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
- 과연 우리는 그런 일상의 순간을, 피어나는 사람들을 제대로 보고 있는가?
- **“때로는 사람이 피는 것”**이라는 말처럼, 사람의 존재 자체가 생동하는 자연의 일부, 봄의 일부라는 것을 다시 떠올리게 해줍니다.
감상 포인트
- 언어의 이미지화: 시와 산문이 함께 어우러져 눈앞에 ‘꽃이 피는 장면’, ‘하늘이 오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 본질을 보는 눈: '꽃'이 아니라 '나무'가 피고, '눈'이 아니라 '하늘'이 오는 것처럼, 사물의 중심과 맥락을 바라보려는 시선이 인상적입니다.
- 일상의 시적 발견: 려원의 표현처럼, 세상의 무수한 사람들 모두가 피어나는 꽃이라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길목은 결국 하나의 커다란 화관일 겁니다.
마음에 남는 문장 모음
“조금만 고개를 돌려 바라보기만 해도 사소한 일상들이 꽃으로 뭉클거리며 피어나고 있다고.”
“때로는 사람이 피는 것이다.”
“꽃이 피는 게 아니라 나무가 피는 거지.”
함께 나눌 수 있는 생각
- 당신은 언제, 누구를 보며 **‘사람이 피는 것 같다’**고 느껴본 적 있나요?
- 당신 안에도 지금 피어나고 있는 무언가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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