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보청기 / 고경자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5. 3. 31. 05:57

보청기 / 고경자

 

소리를 모으는 깊고 푸른 우물에
돌멩이 하나가 일으킨 작은 파문
모았던 당신의 소리를 이제는 돌려줘요
멈춰버린 당신의 심장을 살리려고
달려가는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를
우물은 바닥 속 깊이 모으고 또 모아요
꼬리를 잘라버려 흐려진 소리의 샘
노루귀 세워 봐도 비켜가는 소리들 뿐
당신의 지친 청력에 희망 하나 심을게요.
(시집 ‘고요를 저울질하다’, 고요아침, 2024)

[시의 눈]
음원에서 발생하는 소리는 그 성질상 낮은 소리, 높은·울림·반사 소리 등으로 빛깔을 달리한다. 귀에서 흡수되는 소리는 강도와 진동수에 따라 호감을 주는 소리, 불쾌감을 주는 소리로 차별화되곤 한다. 소리는 감정의 옷을 입고 질감을 달리해 다가온다. 잔잔하고 아름다운 소리는 기억을 환기시킨다. 편안함과 안식을 가져다 준다. 고요를 깨뜨리는 금속성 소음은 불안의식과 고충과 고역을 준다. 오늘날 시국은 매우 어수선하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충돌한다. 날카로운 불협화음이 증폭할 때마다 국민들은 가슴 철렁하다. 올곧은 소리와 왜곡된 소리가 각을 세워 파열음을 내고 있다. 배려와 협력을 모르는 대립과 갈등은 사회적 존재로서 상호작용을 유기한 것 아닌가. 들어야 할 소리를 못 들어서 안타깝고 듣지 않아야 할 소리를 들어야 해서 역겨움을 낳는다. 그 때 내면의 평화는 균열을 일으켜 그 틈새로 불안이 버즘처럼 스며든다. 꺼져가는 소리에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보청기를 통해 참된 소리를 깨달을 수 있다면, 마침내 듣게 된 당신의 소리, 그 소리는 희망의 무게로 감지될 것이다. 삶이 관계이기에 소통의 가치는 절대적이다. 참된 당신의 소리의 공유와 소통,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이다.

 <광주매일신문 윤삼현시인>

'글쓰기 공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0) 2025.03.31
길 없는 길 / 손종호  (0) 2025.03.31
모두부를 시켜놓고 / 심재휘  (0) 2025.03.31
곡비 / 함순례  (0) 2025.03.31
또 하루 / 박성우  (0) 2025.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