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훈한 다짐 / 허당
한 달 한 달은 어슷비슷해도
한 해 한 해는 다르다네.
이른 아침 낡은 거울 들여다보니
객지살이에 얼굴은 쇠약한 노인 꼴.
느긋하게 살아가기란 정말 어렵고
나와 관련된 일 대부분은 허망하기만.
덧없는 인생 얼마나 살랴
한바탕 봄바람에 취해나 보세.
(一月月相似, 一年年不同. 淸晨窺古鏡, 旅貌近衰翁. 處世閑難得, 關身事半空. 浮生能幾許, 莫惜醉春風.)
―‘새해 친구에게 드리다(신년정우·新年呈友)’ 허당(許棠·822∼?)
하루하루는 감지할 겨를 없이 훌쩍 지나고 한 달 한 달도 고만고만하게 흐르는 듯한데 유독 해가 바뀔 즈음이면 세월의 급박한 속도를 실감한다. 일상이 차곡차곡 쌓여 관습이나 역사가 된다면 그걸 하루, 한 달, 한 해 단위로 구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단지 ‘모든 어제들’의 축적일 뿐인 것을. 그렇대도 한 해의 끝자락이나 첫머리에 서면 우리네 마음은 괜히 뒤설렌다. 삶의 리듬에 변화를 주고 한 번쯤 궤도를 벗어나 보자는 저돌적인 작심으로 달뜨기도 한다.
새해 아침 시인은 거울 속 자신의 쇠약해진 모습을 발견하고는 친한 벗을 떠올린다. 다급한 세월의 보폭에 맞추느라 허방지방 살아온 나날, 자신이 기대하고 또 실천했던 일들이 대부분 물거품처럼 허망하게 끝났다는 허탈감. 인생 소회가 실로 씁쓸하다. 그렇다 해도 시인은 친구에게 어리석었던 전철(前轍)을 성찰하자고 권유한다. 술 한잔 나누며 맘껏 봄바람을 즐겨 보자는 훈훈한 다짐을 내보인다. ‘덧없는 인생 얼마나 살랴’는 말은 결코 비관 속 한탄일 수 없다.
[동아일보 이준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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