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강좌/시의 인문학> 시인이 싸워야 할 대상
시인이 말의 표현력, 즉 말솜씨가 없으면 치명적이다. 시는 짧은 문장 속에 긴말이 있어야 하고, 오래 읽어도 싫증 나지 않고, 내용이 기억에 남아야지만 좋은 시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흔히 보고 듣는 광고도, 짧은 내용 안에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깊이 연구하고, 오래 기억되도록 온갖 노력을 다한다. 하물며 언어의 최고봉인 시가 광고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오늘부터 TV광고나 신문 광고, 리디오에서 보고 듣는 광고에 관심을 갖고 그 광고문과 우리가 쓰는 시와 견주어 보고, 과연 내 시는, '말하지 않은 말'이 많이 담겼는지, '오래 기억되는 문장'인지를 살펴볼 일이다. 몇 차례 언급했듯 시는 말글로 겨루는 문학이다. 그러므로 다른 말글보다 앞서야 하는 당위성이 크다.
서정(抒情)의 본뜻은, 개인이 느끼거나 겪은 감정이나 정서를 말한다. 시에서의 서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성이므로 그 사람다운 창의성이 있어야 시로서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 또한 시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개별적인 답변으로 이루어진 갈래다. 그러므로 모든 시를 대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못난 인생이라도 남의 인생을 함부로 폄훼할 수 없듯, 남의 시를 모멸하면 자기의 시도 모멸당한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카를 융(Carl Jung)은 “우리가 비난하는 대상은 바로 자신의 그림이며 내적 인격일 따름이다”라고 했다. 자기가 생각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한 시를 읽었더라도 “저렇게도 쓰는구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것을 까발려서 "저것도 시라고 쓰냐?”라고 비난한다면, 언젠가 자기에게 그 여파가 돌아온다. 누구든 마음에 감춰 둔 칼이 있기에 언제 그 사람에게 거꾸로 보복당할지 모를 일이다. 시인의 인격이란 남의 다름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하고, 시적 대상에게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지녀야 한다. 그러면서 시인이 다투어야 할 대상은 그런 싸움이 아니라 ‘시어(詩語)’다. 자기가 선택한 시어와 치열하게 다툴 때 그 시에 꼭 맞는 시어를 찾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감정과 정서에 알맞은 언어를 찾는 일이 시 짓기다. 이는 노래를 만들 때 가장 어울리는 음을 찾는 일과도 같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 언어처럼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는 흔한 정서보다는 애매모호성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시의 표현 방법이다. 그것이 시의 묘미이므로 독자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시에서 흔히 동원되는 아이러니(irony)는 애매성을 드러내는데에 유용하다. 아이러니는 우리말로는 반어법(反語法)으로 번역되지만, 표면과 이면이 다른 양면성을 가지기 때문에 이를 잘 이용하면 통쾌하거나 재미있는 시를 쓸 수 있다. 다음은 아이러니를 이용한 시다. 졸고(拙稿)를 소개하면서 오늘은 글을 짧게 맺는다.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더니
무료한 날을 낙서하듯 살았고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질 때
바닥을 기어도
뻔뻔했으니 됐다
밤의 한 가운데를 지나오고
등 돌릴 수 없는 일들이 산적해도
과장된 현실의 간극을
여백의 창고에 쟁여 뒀으니
됐다
완벽해서 이룰 수 없는 꿈
공허의 잔향을 따라가다 방황하는 것보단
낫지
방황은 무슨 얼어 죽을
놀기도 바빴는데
AI 펜타닐이 점령하는 들판
몇 종류의 벌레를 없애기 위해
사람들은 그냥 돌을 던져보는 거야
울지도 마
오염과 질병과 죽음은 같은 거라는
속임수에 죽지 않으면 돼
뜨겁게 살아
빨간 팬티를 입고 죽은 이에겐
청춘이 영원히 남거든
뻔뻔한 민낯을 드러내 봐
샘이 퐁퐁 솟잖아
사랑이 펄펄 끓으면
한참 안 추워
가난한 사람이 더 잘 쓴다고?
시를?
미친 소리
부자가 되어야 사랑이고 시고 뭐고 돼
그것 일란성이야
슬픈 표정으로 애쓰지 마
라면을 좋아한다고?
빨리 죽어
똥폼으로도 살면 살아져
레스토랑에서 소의 안심살을 뜯어봐
평론가는 그런 사람을 좋아해
울지마
울어본 사람이 기쁨을 안다고?
제대로 울어보지도 않은 사람의 허풍이야
청춘을 감옥에 가두지 마
그냥 생긴대로 즐겁게 살아
배를 잡고 웃어봐
_이어산「죽어가려는 것에게 들려주는 아무 말」전문
■ 회원 디카시 한 편 감상
붓꽃 핀 날
시인이 말의 표현력, 즉 말솜씨가 없으면 치명적이다. 시는 짧은 문장 속에 긴말이 있어야 하고, 오래 읽어도 싫증 나지 않고, 내용이 기억에 남아야지만 좋은 시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흔히 보고 듣는 광고도, 짧은 내용 안에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깊이 연구하고, 오래 기억되도록 온갖 노력을 다한다. 하물며 언어의 최고봉인 시가 광고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오늘부터 TV광고나 신문 광고, 리디오에서 보고 듣는 광고에 관심을 갖고 그 광고문과 우리가 쓰는 시와 견주어 보고, 과연 내 시는, '말하지 않은 말'이 많이 담겼는지, '오래 기억되는 문장'인지를 살펴볼 일이다. 몇 차례 언급했듯 시는 말글로 겨루는 문학이다. 그러므로 다른 말글보다 앞서야 하는 당위성이 크다.
서정(抒情)의 본뜻은, 개인이 느끼거나 겪은 감정이나 정서를 말한다. 시에서의 서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성이므로 그 사람다운 창의성이 있어야 시로서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 또한 시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개별적인 답변으로 이루어진 갈래다. 그러므로 모든 시를 대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못난 인생이라도 남의 인생을 함부로 폄훼할 수 없듯, 남의 시를 모멸하면 자기의 시도 모멸당한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카를 융(Carl Jung)은 “우리가 비난하는 대상은 바로 자신의 그림이며 내적 인격일 따름이다”라고 했다. 자기가 생각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한 시를 읽었더라도 “저렇게도 쓰는구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것을 까발려서 "저것도 시라고 쓰냐?”라고 비난한다면, 언젠가 자기에게 그 여파가 돌아온다. 누구든 마음에 감춰 둔 칼이 있기에 언제 그 사람에게 거꾸로 보복당할지 모를 일이다. 시인의 인격이란 남의 다름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하고, 시적 대상에게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지녀야 한다. 그러면서 시인이 다투어야 할 대상은 그런 싸움이 아니라 ‘시어(詩語)’다. 자기가 선택한 시어와 치열하게 다툴 때 그 시에 꼭 맞는 시어를 찾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감정과 정서에 알맞은 언어를 찾는 일이 시 짓기다. 이는 노래를 만들 때 가장 어울리는 음을 찾는 일과도 같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 언어처럼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는 흔한 정서보다는 애매모호성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시의 표현 방법이다. 그것이 시의 묘미이므로 독자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시에서 흔히 동원되는 아이러니(irony)는 애매성을 드러내는데에 유용하다. 아이러니는 우리말로는 반어법(反語法)으로 번역되지만, 표면과 이면이 다른 양면성을 가지기 때문에 이를 잘 이용하면 통쾌하거나 재미있는 시를 쓸 수 있다. 다음은 아이러니를 이용한 시다. 졸고(拙稿)를 소개하면서 오늘은 글을 짧게 맺는다.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더니
무료한 날을 낙서하듯 살았고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질 때
바닥을 기어도
뻔뻔했으니 됐다
밤의 한 가운데를 지나오고
등 돌릴 수 없는 일들이 산적해도
과장된 현실의 간극을
여백의 창고에 쟁여 뒀으니
됐다
완벽해서 이룰 수 없는 꿈
공허의 잔향을 따라가다 방황하는 것보단
낫지
방황은 무슨 얼어 죽을
놀기도 바빴는데
AI 펜타닐이 점령하는 들판
몇 종류의 벌레를 없애기 위해
사람들은 그냥 돌을 던져보는 거야
울지도 마
오염과 질병과 죽음은 같은 거라는
속임수에 죽지 않으면 돼
뜨겁게 살아
빨간 팬티를 입고 죽은 이에겐
청춘이 영원히 남거든
뻔뻔한 민낯을 드러내 봐
샘이 퐁퐁 솟잖아
사랑이 펄펄 끓으면
한참 안 추워
가난한 사람이 더 잘 쓴다고?
시를?
미친 소리
부자가 되어야 사랑이고 시고 뭐고 돼
그것 일란성이야
슬픈 표정으로 애쓰지 마
라면을 좋아한다고?
빨리 죽어
똥폼으로도 살면 살아져
레스토랑에서 소의 안심살을 뜯어봐
평론가는 그런 사람을 좋아해
울지마
울어본 사람이 기쁨을 안다고?
제대로 울어보지도 않은 사람의 허풍이야
청춘을 감옥에 가두지 마
그냥 생긴대로 즐겁게 살아
배를 잡고 웃어봐
_이어산「죽어가려는 것에게 들려주는 아무 말」전문
■ 회원 디카시 한 편 감상
붓꽃 핀 날
어젯밤에 아버지께서
다녀가셨습니다
넣어 두셨던 붓을 꺼내 먹을 갈고
쉬엄쉬엄 일하라는
글 써놓으시고
_ 양승례
나는 ‘아버지’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울컥해진다. 나의 젊은 날, 조그마한 성취를 이루고는 보란듯이 자랑스럽게 귀향하던 날, 들에서 일을 마치고 농기구를 리어커에 싣고 집으로 오시던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평생 효도 한 번 못하다가 “이제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효도를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먼저 떠나시고 나는 불효를 씻지 못했다. 아버지와 종교가 달라서 갈등했고, 부모님이 원하는 진로에 반하여 내 마음대로 결정했기 때문에 항상 마음의 빚이 있었기에 그 안타까움과 한은 내 일생 따라다닌다.
오늘 위의 디카시를 접하고는 만감이 교차했다. 꿈에서라도 한 번 뵙고 싶었던 아버지 생각 때문이었다. 양승례 시인이 붓꽃에서 떠올린 그리운 아버지, 세상살이에 고단한 딸에게 “쉬엄쉬엄 일하라고/ 글 써놓으시고” 가셨단다. 그도 아버지의 추억이 많은가 보다. 그는 란(蘭) 농사를 짓고 있다. 란을 키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습성이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니어서 아기 다루듯이 돌봐주지 않으면 까딱하면 실농(失農)한다. 저 사진 속의 란을 아버지의 붓으로 본 포착이 아련하다. 붓글을 쓰시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저토록 청초한 란 붓으로 딸에게 건강을 염려하면서 글을 써놓고 가셨다고 한다.
이처럼 디카시는 사진과 시적 표현이 합쳐질 때, 의미가 살아나는 형태가 권장된다. 쉽게 읽혀지지만 결코 가벼운 문학이 아니고 다음에 읽어도 싫증 나지 않는 상태가 좋은 디카시다. <이어산 시인>
다녀가셨습니다
넣어 두셨던 붓을 꺼내 먹을 갈고
쉬엄쉬엄 일하라는
글 써놓으시고
_ 양승례
나는 ‘아버지’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울컥해진다. 나의 젊은 날, 조그마한 성취를 이루고는 보란듯이 자랑스럽게 귀향하던 날, 들에서 일을 마치고 농기구를 리어커에 싣고 집으로 오시던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평생 효도 한 번 못하다가 “이제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효도를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먼저 떠나시고 나는 불효를 씻지 못했다. 아버지와 종교가 달라서 갈등했고, 부모님이 원하는 진로에 반하여 내 마음대로 결정했기 때문에 항상 마음의 빚이 있었기에 그 안타까움과 한은 내 일생 따라다닌다.
오늘 위의 디카시를 접하고는 만감이 교차했다. 꿈에서라도 한 번 뵙고 싶었던 아버지 생각 때문이었다. 양승례 시인이 붓꽃에서 떠올린 그리운 아버지, 세상살이에 고단한 딸에게 “쉬엄쉬엄 일하라고/ 글 써놓으시고” 가셨단다. 그도 아버지의 추억이 많은가 보다. 그는 란(蘭) 농사를 짓고 있다. 란을 키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습성이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니어서 아기 다루듯이 돌봐주지 않으면 까딱하면 실농(失農)한다. 저 사진 속의 란을 아버지의 붓으로 본 포착이 아련하다. 붓글을 쓰시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저토록 청초한 란 붓으로 딸에게 건강을 염려하면서 글을 써놓고 가셨다고 한다.
이처럼 디카시는 사진과 시적 표현이 합쳐질 때, 의미가 살아나는 형태가 권장된다. 쉽게 읽혀지지만 결코 가벼운 문학이 아니고 다음에 읽어도 싫증 나지 않는 상태가 좋은 디카시다. <이어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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