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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강좌 / 시의 인문학> 시의 지구력과 달리기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4. 8. 11. 05:56

<토요 강좌 / 시의 인문학> 시의 지구력과 달리기


이 강좌에서 반복하는 말 중에는 끈기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나올 것이다. 시는 지식으로 쓰는 장르가 아니라 끈기와 집요함으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 끈기에도 품질이 있다. 어쩔 수 없이 계속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어느 정도 해보다가 중단하는 행동 등은 나쁜 끈기다. 반면, 즐기면서 좋은 결과를 얻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은 집요함은 시인의 자세로는 매우 유용한 끈기다. 시 쓰기는 마치 달리기 선수와 같기 때문이다. 선수는 하루아침에 되진 않는다. 기초체력을 키우는 지구력 운동은 꼭 필요하다. 시에서도 기초 체력인 지구력을 기르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시적 대상과의 소통이 이루어질 때까지 물고 늘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시간을 할애하여 시집을 읽거나 책을 읽는 것이다. 또한 좋은 시집도 많이 읽어야 하겠지만, 시의 체력을 키우는데는 철학적 소양을 키우는 책을 읽는 일도 적극 권장된다. 요즘은 철학서도 요점만 정리하여 재미있게 편집한 책이 많이 있으므로 무더위를 즐기면서 철학적 피서를 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다만 책을 읽는 행위가 목적이 아니라, 그 책에서 나의 것으로 체화될 수 있는 내용을 찾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지구력을 기르는 일은 시간을 투자해야 되고 힘이 들기도 하여서 때로는 포기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시를 쓰기 위해 공부하는 시간은 인생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즐겁게 하기를 바란다. 달리기 선수가 중간에 포기한다면 그동안의 공력이 너무 허무하지 않겠는가?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결과는 '시간 낭비'다. 시간은 우리 삶의 일부다. 그러므로 삶의 일부를 버리지 말자. 이곳은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이 강좌를 읽는 사람은 이미 시간을 투자한 사람들이므로 모두 좋은 시인이 될 때까지 시와 함께 가는 지구력이 있기를 바란다.

다음의 시 두 편을 감상 해보자.


시인이 되려면

시인이 되려면
새벽 하늘의 견명성같이
밤에도 자지 않는 새같이
잘 때에도 눈 뜨고 자는 물고기같이
몸 안에 얼음 세포를 가진 나무같이
첫 꽃을 피우려고 25년 기다리는 사막만년청풀 같이
1kg의 꿀을 위해 560만 송이의 꽃을 찾아가는 벌같이
성충이 되려고 25번 허물 벗는 하루살이같이
얼음구멍을 찾는 돌고래같이
하루에도 70만 번씩 철썩이는 파도같이

제 스스로를 부르며 울어야 한다

자신이 가장 쓸쓸하고 가난하고 높고 외로울 때
시인이 되는 것이다



벌새가 사는 법

벌새는 1초에 90번이나
제 몸을 쳐서
공중에 부동자세로 서고
파도는 하루에 70만 번이나
제 몸을 쳐서 소리를 낸다

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
내 몸을 쳐 시를 쓰나



위 시 두 편은 천양희 시인의 시집『너무 많은 입』에 나오는 시다. 그는 정말 치열하고 끈질기게 시를 쓰는 사람이다. 나는 그를 2004년 9월에 ‘화요문학회가 만난 이달의 시인’에 천양희 시인을 초청하면서 처음으로 만났다. 그때 나는 화요문학회 회장의 심부름을 하고 있었던 터라 그와의 통화를 몇 번 할 수 있었다. 그를 처음 대면했을 때의 느낌은 누님같이 포근함도 있었지만, 눈매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것 같은 날카로움이 있었다. 그는 2시간의 강의를 통하여 하루에도 4계절이 있다고 역설했다. 어느 순간 봄처럼 느껴지다가, 어느 때는 불같기도 하고, 또 어떨 땐 쓸쓸하기도 하며, 자기 고집에 빠진 꽁꽁 언 마음으로 변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그 미세한 차이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지만 새로운 감각이 생긴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깊은 사유는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시를 읽고 시적 대상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근성이 있어야 한다”라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 소개한 시가 위의 예시 두 편이다. 그는 “시인은 가난하고 쓸쓸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마음의 자세를 말한다고 했다. 그 후 나는 그의 시를 자주 읽었는데, 그의 시 대부분은 현란한 수사가 없다. 그러나 사유의 깊이와 탄탄한 문장력은 깊은 수련과 끈질긴 시작의 결과임을 느낄 수 있었다.

천양희 시인처럼 끈질긴 노력없이는 그 무엇도 이뤄질 수 없다는 생각과, 위 시가 함의하는 시인의 자세는 나를 일으켜 세우는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시를 쓰는 일은, 게으른 나의 생활에서 벗어나는 일이고, 죽은 사물에도 생기를 불어넣어서 함께 살아가는 일임을 몸으로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천양희 시인은 시를 쓰기 전에 꼭 손을 씻는 버릇이 있다고도 했다. 나는 그처럼 글을 쓸 때에 경건한 마음으로 치열하게 쓰지 못했다는 반성을 했다. 그래서 나의 짧은 실력이지만,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을 위해 덤벙덤벙 성의없이 쓰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런 마음이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도 하지만, 그것을 몰라주는 사람이 있어도 원망하진 않는다. 나의 부족한 필력을 채우기 위해 “더욱 노력 해야되겠다”라는 동기부여와 도전을 받기 때문이다.


회원 디카시 한 편 감상

두 사람
여름 되니 매미 우는 게 아니라
매미 우니 여름이듯

사랑하니까 둘이 있는 게 아니라
둘이 있으면 사랑하게 되는 걸 거야

_이유상


위 디카시는 사랑을 역설적인 표현으로 정의 한다. 둘이 같이 있으므로 사랑하게 된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하니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두 쌍의 남녀를 대칭적으로 배치한 각도에서 포획한 순간성이 작품을 살리고 있다. 당연한 말인 듯 다른 의미를 내포한 그의 진술은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있다. 이처럼 시인의 진술적 태도와 사진의 정합성(合性 compatibility)은 예술적 디카시에 근접하는 방법이다.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시적 감흥과 사진의 구도나 명암, 작가의 의도가 살아나야 시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꽃 사진이나 풍경 사진 등을 선택할 때 특히 주의해야 한다. 사람의 의도가 담겨있거나 손으로 만져지지 않은 것은 자연의 표절에 불과한 것이므로 조심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연출하란 말이 아니라 구도와 시적 대상의 선택과 집중을 통하여 그것을 구현하자는 말이다.

이유상 시인의 디카시를 접하면서 자주 느꼈던 것은 멀티페르소나(multipersona)적 기법을 살릴 줄 안다는 점이다. 즉 사물을 의인화 시켜 다양한 정체성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사진의 예술성과 시적 표현의 합일을 통한 확장된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사진의 가독성 못지 않게 더 깊은 시적 표현이 받혀준다면 그는 디카시단의 중심부에서 자기의 영토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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