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 나에게 맞는 시, 짝 찾기

귀촌일기 박뫼사랑 2018. 1. 5. 11:07

<토요 시 창작 강좌>

  ■ 나에게 맞는 시, 짝 찾기

    시를 멋모르고 썼을 때에는 겉멋이 든 시어로 사물의 묘사만 잘 해도 시가 다 된 줄 안다. 그러다 묘사에 머문 시는 시가 아닌 '시 이전의 시'라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시 쓰기가 점점 두려워진다. 오죽하면 시를 꽤 잘 쓰는 유명 시인조차 “시인은 천형의 고통을 지고 가는 사람”이라는 말까지 할까?! 그만큼 제대로 된 시를 쓴다는 것은 어려움이 따른다는 말이다.
   시는 세상에서 가장 콧대 높은 여자처럼 좀처럼 내 손을 잡아주거나 자신의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 이 고비를 넘지 못한 사람은 시 쓰기를 포기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시를 짝사랑 하다가 걷어차이는 수모를 당하는 꼴이다. 나는 여러분께 그런 짝사랑을 그만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시에서 손을 떼란 말이냐고 반문하지 마시라. 왜 귀한 시간을 쏟아 놓고 물러나느냐 말이다.

   세상 어딘가에는 자기에게 맞는 짝이 있다. 그 짝을 잘못 선택하면 행복하지 않거나 어쩔 수 없는 의무감으로 살기도 한다. 시에도 자기에게 맞는 짝이 있다. 그 짝을 제대로 찾아야만 시는 나에게 행복도 주고 나의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나의 팔짱을 끼고는 세상을 떳떳하게 활보하게 되는 특권을 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짝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1. 시를 두려워 하지 말고 나를 드러내자

   시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시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시는 우리 집에 숨어 있을 수도 있고 폐가에서 당신을 지켜보기도 하며 구름을 타고 날아다니기도 한다. 시는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할 곳에 숨어 있기도 하지만 어디든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자세히 보면 보이고 자세히 보아야만 자꾸 보여준다. 시의 모습을 구별하는 시안(詩眼)이 열려야 제대로된 시의 짝을 찾게 된다.
   또한 시는 자기의 생각을 진솔하게 토로하고 고백하는 고해성사이다. 시가 권위를 갖는 것은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진솔하게 마음을 드러내는 문학 양식이기 때문이다. 독자로 하여금 "어쩜 이렇게 내 마음을 표현 했을까!" 라는 공감을 이끌어 내어서 독자의 마음에 응어리 진 것을 위로하거나 풀어 낼 수 있다면 시가 치유의 기능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문학치료'라는 새로운 장르가 생겨날 정도이다. 시쓰기에서는 나의 치부 까지도 드러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치유의 시가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나를 과감하게 드러낼 용기가 있을 때 시가 찾아온다. 이때 부끄럼이 없어야 한다. 어떤 이야기라도 드러낼 수 있어야하고 사기를 쳤거나 도둑질한 이야기도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비밀을 모두 드러내거나 나의 전부를 보여줄 각오를 해야 시는 나의 배필이 된다. 이말을 오해하여 직설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게 되는 우를 범하지 말자. 진실하게 자기를 드러내되 은유적, 함축적, 상징적으로 쓰라는 말이다. 직설적인 글은 앞뒤 가리지 않는 동네 싸움꾼이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는 것과 같다.

   2. 잘 쓰려고 하면 시가 안 된다.

   시어(詩語)가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보통 쓰는 말인 구어체(口語體)이다. 사실 시는 구어체를 잘 조합해 놓은 것이다. 시를 머리로 쓰려고 하면 괴로움이 따른다. 내가 쓰려고 하는 대상과 대화를 하는 느낌으로 써라. 혼자서 머리를 쓰니까 잘 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주전자의 물이 끓고 있을 때, "너는 무슨 속이 그렇게 뜨겁게 끓고 있니?"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그러면 주전자가 대답할 것이다. "세상이 맘대로 잘 안 돼요. 스트레스가 쌓여서 폭발하려고 해요"라든지. 그러면 당신이 또 물어보는 것이다. "혹시 살아온 방법이 잘못 된 게 아닐까?"이런 식으로 묻고 답하면서 대화를 기록하듯 쓰는 것이다. 그렇게 쓴 글을 가지치기를 하고 적확(適確)한 말인지를 생각해보고 다듬는 과정이 시 쓰기다. 이렇게 사물과 주고받는 대화를 풀이하여 글을 쓰기 시작하면 그 대상은 무궁무진하다. 그것이 사람일 수도, 생명 있는 것, 또는 생명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시인이란 "존재하는 그 무엇에 무엇인가를 보태고 붙여서 함축된 감흥을 불러내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머리로 쓰면 쥐가 나고 가슴으로 쓰면 시가 된다."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잘 쓰려는 생각을 버리고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는 것을 일단 물고 늘어져라. 그것을 설명하려고 하지 말고 새로운 이야기, 나의 이야기가 녹아 있는 방법을 사용하면 그 시는 성공할 것이다.

   3. 시를 재미있게 쓰자.

   시도 하나의 상품이다. 독자가 읽지 않는 재미없는 시는 오래가지 못한다. 나도 재미있고 독자도 재미있는 시를 쓰자. 그 시를 읽었을 때 재미있는 시라면 좋은 시다. 행복의 다른 말이 재미이며 재미를 통해서 사람은 기쁘거나 즐거워서 행복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재미없는 시는 상점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팔리지 않는 상품과 같다. 시인은 시라는 상품의 공급자이고 독자는 그것을 소비하는 수요자다. 소비자는 신상품을 좋아한다. 의도가 다 드러난 시, 뻔한 이야기, 횡설수설하는 시는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상품이다.
   시가 재미없거나 지루한 것은 잘난 체하거나 친구 가족 등 주변을 자랑하는 이야기, 명령 투의 이야기, 현실성과 동떨어진 뜬구름 잡는 식의 이야기, 자기 존재와 무관한 내용이거나 생동감이 없는 시이기 때문이다. 과거나 미래의 이야기라도 현실과 접목되어 공감을 이끌 수 있어야 살아있는 시가 된다.

   4. 소통이 되게 하자.

   언어는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시의 목적도 '의도의 전달'이다. 물론 시인의 서정적 충동을 글로써 명확히 전달하기는 어렵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것 같이 언어의 불충분성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인은 언어를 다양하게 표현하여 마음속에 있는 것을 감동적으로 전달해야 시인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무의미의 시를 썼던 김춘수 시인조차 "관념, 정서, 욕망은 함축성 있게, 음영은 짙게, 미묘하게 공감하도록 전달하는 것이 시다"고 설파 했을까. 그러므로 시를 아무리 뜯어보아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것은 독자의 잘못이 아니라 시인의 표현 미숙에서 오는 것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물론 어려운 시도 훌륭한 완성도를 지닌 것도 있다. 그런 시는 읽을수록 맛이 나는 것이지만 두 번 세 번 읽어도 해독되지 않는 시는 독자를 무시한 것이니 당신도 그 시를 무시해도 된다. 처음부터 불통을 전재로 쓴 시도 있지만 그런 시는 자기 혼자만 보고 즐기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5. 냉정한 퇴고를 하자

   기본적으로 뜨겁고 적극적인 마음으로 시를 쓰되 퇴고는 냉정하게 해야 한다. 초보 시절에는 힘들여 시를 써놓고 그것을 빨리 자랑하고 싶어서 얼른 발표를 해버리는 수가 많다. 퇴고를 무시하면 그 사람의 글은 무시당하기 십상이다. 퇴고를 하라니까 자기와 실력이 비슷한 초보의 작품평과 훈수를 귀담아 듣고 고치는데 그것이 시가 망하게 되는 길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라. 시를 볼 줄 아는 시력(詩歷)이 있거나 시를 자기보다 잘 쓰는 전문가의 조언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바둑의 고수는 여러 수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전문가의 지적은 충감도(蟲瞰圖)와 조감도(鳥瞰圖)를 볼 수 있는 시안(詩眼)을 가진 사람이기에 시인으로 성공하는데 중요한 변수가 된다. 시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자기 고집대로 쓰려는 사람은 시가 제대로 완성되기가 쉽지 않다. 세상을 내 고집대로 살 수 없듯이 시도 자기 마음대로 퍼지르면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흉기가 될 수 있다. 말로 다 설명하지 않으면서 형상화를 시키는 것이 시인데 연습과 퇴고가 없이 그것이 되겠는가?

   - 이어산, <생명시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