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 창작 강좌>
■ 등단과 시단의 현실, 시 읽는 법
1월1일에는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 당선자를 발표할 것이다. 부릅뜬 눈으로 살펴보고 시인이 몇 번을 읽어도 뜻이 잡히지 않는 시는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서 항의를 해야 한다. 물론 읽어내는 시안(詩眼)이 밝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십 년 이상 시를 쓴 사람조차 읽어내지 못하는 시를 일반 국민들이 즐기라는 것은 희극이다.
오늘은 시 읽는 방법 몇 가지를 소개 한다.
1. 깨끗한 시집을 없애라.
시집이 깨끗하면 시는 그곳에서 깨끗하게 잠자다가 죽는다. 좋은 시를 깨우는 일은, 좋은 시어엔 밑줄을 치면서 깨우고, 동그라미 그리면서 깨우고, 자꾸 흔들어보고, 나의 생각이나 모방시도 적어놓는 등 새까맣게 학대 할수록 그 시가 시집을 박차고 나와서 내 평생의 동반자가 되기도 한다.
2. 맛있게 먹어라.
맛있는 먹이를 먹는 개는 곧 세상이 끝나는 듯 집중해서 먹는다. 먹을 땐 맛있게 신들린 듯 집중해서 먹어야 한다. 시를 맛있게 먹을 줄 알아야 맛있는 시를 쓸 수 있다. 세상의 유명 요리사는 다른 요리사의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본 사람이다. 당신은 시집을 몇 권이나 집중해서 맛있게 먹었는가?
3. 감사의 마음을 가져라.
맛있는 먹이를 주는 주인에겐 무한 반복으로 꼬리를 흔드는 개처럼 내게 좋은 시를 제공한 시인의 시를 향해서 감사의 마음을 가져라. 좋은 음식을 알아보고 그것을 만든 이에게 감사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다. 그래야 나의 품격이 높아진다. 그리고 시의 맛을 안다는 것은 내 시의 스타일이 생겼다는 뜻도 된다. 그리고 꼬리가 몸통을 흔들려는 오만한 시를 가려낼 수 있다
4. 감동을 받는 능력을 키워라.
같은 것을 봐도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한다. 감동하는 것도 능력이다. 감동을 한다는 것은 보통의 사람이 못 본 것을 보는 감수성의 능력이다. 감동의 능력이 클수록 나의 내면에 얼어붙어있는 무한한 세상을 깨우는 일이다.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느끼는 능력이 중요하고, 느꼈으면 감동하고 감동한 것은 글로 남겨야 능력의 실체가 생기는 것이다.
5.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시를 많이 읽은 사람은 멀리 하늘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가까이 보는 것은 충감도(蟲瞰圖)적인 시각이고 멀리 볼 수 있다는 것은 조감도(鳥瞰圖)적인 시각이다. 즉 균형을 맞춘 시안으로 읽어야 중층적 다의적 시를 읽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보이는 현상 뒤에 있는 조감도적 시 읽기를 하자는 것이다. 시를 위해 눈을 들어 하늘을 보자.
오늘은 시의 이미지가 살아 있고 구성(기승전결)이 단단한 시 한 편을 소개한다.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재(節制)와 균형(均衡)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圓)은 모를 세우고
이성(理性)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나는 지금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魂)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 오세영, <그릇 1> 전문
우리나라 시단에서 시인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이 넓게 열려있는 것 같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제대로 대우받는 시인으로 등단할 수 있는 장벽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수많은 문학지가 등단 장사와 책장사를 하는 바람에 수준 미달의 시인들을 쏟아내고 있는 탓도 있지만, 시단을 장악하고 있는 유명 평론가와 시인들은 작품성을 이유로 오히려 벽을 더 높여가면서 자신들의 사단(私壇)을 만드는 구조가 고착화 되고 있다.
소위 유명 문학지의 당선자 현황을 보면 일 년에 배출되는 시인의 숫자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데, 보통의 경우 상반기 1~2명, 하반기도 그만큼의 숫자를 뽑는다. 어떤 문학지는 몇 백 편의 응모작 속에서도 당선자를 내지 않거나 1년에 한두 명 정도의 시인을 배출하는 곳도 더러 있다. 물론 좋은 시인을 뽑으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되지만 시인이 되는 일을 판검사나 의사 배출하는 것 보다 더 어렵게 해놓고 대단히 잘하는 일인냥 그것을 자랑할 일은 아닌 것이다.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 당선자도 1년에 한 명의 시인을 뽑는다. 시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을 제대로 포용하고 한국 시의 발전 동력으로 삼으려는 노력은커녕, 자기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으면 수준 낮은, 시인 아닌 시인으로 매도하여 내쫒거나 저들끼리의 사단을 만드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일인지 이제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선진국의 경우 시의 작품성도 주목하지만 국민들이 즐기는 쪽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엘리트체육 못지않게 다양한 생활체육을 활성화 시키는 이유처럼 결국 국민의 정신건강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도 국민생활 저변에 자연스레 스며들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정책적 지원을 해 준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엘리트 시인이 최고인양 쳐준다. 시만 잘 쓰면 사람에 대해서는 알아보지도 않고 뽑는다. 정말 시만 잘 쓰면 다 된 일인가? 그것도 작품성이라는 이유로 내용이 난해하여 쓴 사람도 뜬구름 잡는 식의 설명을 할 수 밖에 없는 시가 우리나라 메이저급 시 전문지에 도배되고 있는데 이게 정상이란 말인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 틈새를 비집고 소위 2류, 3류 상업적 문예지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서 문학에 관임이 있는 사람을 유혹한다. 이런 매체는 시는 물론이고 수필 동시, 심지어는 단편소설이나 시나리오도 받아 준다. 가끔 좋은 작품이 나오기도 하지만 상업적 목적으로 운영하는 구조이므로 기초적인 실력이나 최소한 작품의 구성요소를 갖추지 못해도 눈감고 등단을 시켜주는 것이 예사다. 그러나 시단의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 곳으로도 등단만 하면 시인이 되고 작가가 되는 줄 알고 있다. 물론 시인이나 작가로 성공한 사람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이런 곳으로 잘못 등단을 하면 그 잡지사를 벗어난 주류시단에서 인정 받기가 쉽지 않고 평생 2류, 3류라는 시인의 꼬리표가 따라다닐 정도로 작품발표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1. 시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시 전문지 인가?
2. 발행인, 주간, 공동주간, 편집 고문이나 자문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가?
3. 그 곳으로 등단한 사람들이 시단에서 제대로 활동하고 있는 곳인가?
4. 등단을 조건으로 금품을 요구하거나 등단작이 실린 잡지구입을 강매하지는 않는가?
시인이나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꼭 독자가 먼저 되어서 관련 책을 많이 읽고 공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 공부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은 독자에 대한 예의고 시에 대한 예의다. 필자의 <생명시 운동>은 그런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 운동을 다른 말로 하면 ''생활문학운동''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근래에 일고 있는 시낭송 열풍이다. 이를 통해 시가 우리의 삶에 들어오는 중요한 창구가 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현대시를 왜곡하는 일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시인들이 자기 시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남의 시를 외워서 낭송해 주고 독자와 공감하도록 하는 시 낭송가는 어줍찮은 시인들 보다 몇 배 훌륭한 일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나는 낭송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난해한 시는 독자들이 외면해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시의 지평을 넓히고 작품의 다양성을 위해 난해하거나 실험적인 시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전부인양 하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의 핏속에 흐르는 서정적 감성이나 운율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시단에 서정의 깃발을 다시 세우자는 운동이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
■ 등단과 시단의 현실, 시 읽는 법
1월1일에는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 당선자를 발표할 것이다. 부릅뜬 눈으로 살펴보고 시인이 몇 번을 읽어도 뜻이 잡히지 않는 시는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서 항의를 해야 한다. 물론 읽어내는 시안(詩眼)이 밝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십 년 이상 시를 쓴 사람조차 읽어내지 못하는 시를 일반 국민들이 즐기라는 것은 희극이다.
오늘은 시 읽는 방법 몇 가지를 소개 한다.
1. 깨끗한 시집을 없애라.
시집이 깨끗하면 시는 그곳에서 깨끗하게 잠자다가 죽는다. 좋은 시를 깨우는 일은, 좋은 시어엔 밑줄을 치면서 깨우고, 동그라미 그리면서 깨우고, 자꾸 흔들어보고, 나의 생각이나 모방시도 적어놓는 등 새까맣게 학대 할수록 그 시가 시집을 박차고 나와서 내 평생의 동반자가 되기도 한다.
2. 맛있게 먹어라.
맛있는 먹이를 먹는 개는 곧 세상이 끝나는 듯 집중해서 먹는다. 먹을 땐 맛있게 신들린 듯 집중해서 먹어야 한다. 시를 맛있게 먹을 줄 알아야 맛있는 시를 쓸 수 있다. 세상의 유명 요리사는 다른 요리사의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본 사람이다. 당신은 시집을 몇 권이나 집중해서 맛있게 먹었는가?
3. 감사의 마음을 가져라.
맛있는 먹이를 주는 주인에겐 무한 반복으로 꼬리를 흔드는 개처럼 내게 좋은 시를 제공한 시인의 시를 향해서 감사의 마음을 가져라. 좋은 음식을 알아보고 그것을 만든 이에게 감사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다. 그래야 나의 품격이 높아진다. 그리고 시의 맛을 안다는 것은 내 시의 스타일이 생겼다는 뜻도 된다. 그리고 꼬리가 몸통을 흔들려는 오만한 시를 가려낼 수 있다
4. 감동을 받는 능력을 키워라.
같은 것을 봐도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한다. 감동하는 것도 능력이다. 감동을 한다는 것은 보통의 사람이 못 본 것을 보는 감수성의 능력이다. 감동의 능력이 클수록 나의 내면에 얼어붙어있는 무한한 세상을 깨우는 일이다.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느끼는 능력이 중요하고, 느꼈으면 감동하고 감동한 것은 글로 남겨야 능력의 실체가 생기는 것이다.
5.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시를 많이 읽은 사람은 멀리 하늘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가까이 보는 것은 충감도(蟲瞰圖)적인 시각이고 멀리 볼 수 있다는 것은 조감도(鳥瞰圖)적인 시각이다. 즉 균형을 맞춘 시안으로 읽어야 중층적 다의적 시를 읽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보이는 현상 뒤에 있는 조감도적 시 읽기를 하자는 것이다. 시를 위해 눈을 들어 하늘을 보자.
오늘은 시의 이미지가 살아 있고 구성(기승전결)이 단단한 시 한 편을 소개한다.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재(節制)와 균형(均衡)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圓)은 모를 세우고
이성(理性)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나는 지금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魂)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 오세영, <그릇 1> 전문
우리나라 시단에서 시인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이 넓게 열려있는 것 같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제대로 대우받는 시인으로 등단할 수 있는 장벽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수많은 문학지가 등단 장사와 책장사를 하는 바람에 수준 미달의 시인들을 쏟아내고 있는 탓도 있지만, 시단을 장악하고 있는 유명 평론가와 시인들은 작품성을 이유로 오히려 벽을 더 높여가면서 자신들의 사단(私壇)을 만드는 구조가 고착화 되고 있다.
소위 유명 문학지의 당선자 현황을 보면 일 년에 배출되는 시인의 숫자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데, 보통의 경우 상반기 1~2명, 하반기도 그만큼의 숫자를 뽑는다. 어떤 문학지는 몇 백 편의 응모작 속에서도 당선자를 내지 않거나 1년에 한두 명 정도의 시인을 배출하는 곳도 더러 있다. 물론 좋은 시인을 뽑으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되지만 시인이 되는 일을 판검사나 의사 배출하는 것 보다 더 어렵게 해놓고 대단히 잘하는 일인냥 그것을 자랑할 일은 아닌 것이다.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 당선자도 1년에 한 명의 시인을 뽑는다. 시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을 제대로 포용하고 한국 시의 발전 동력으로 삼으려는 노력은커녕, 자기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으면 수준 낮은, 시인 아닌 시인으로 매도하여 내쫒거나 저들끼리의 사단을 만드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일인지 이제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선진국의 경우 시의 작품성도 주목하지만 국민들이 즐기는 쪽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엘리트체육 못지않게 다양한 생활체육을 활성화 시키는 이유처럼 결국 국민의 정신건강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도 국민생활 저변에 자연스레 스며들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정책적 지원을 해 준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엘리트 시인이 최고인양 쳐준다. 시만 잘 쓰면 사람에 대해서는 알아보지도 않고 뽑는다. 정말 시만 잘 쓰면 다 된 일인가? 그것도 작품성이라는 이유로 내용이 난해하여 쓴 사람도 뜬구름 잡는 식의 설명을 할 수 밖에 없는 시가 우리나라 메이저급 시 전문지에 도배되고 있는데 이게 정상이란 말인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 틈새를 비집고 소위 2류, 3류 상업적 문예지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서 문학에 관임이 있는 사람을 유혹한다. 이런 매체는 시는 물론이고 수필 동시, 심지어는 단편소설이나 시나리오도 받아 준다. 가끔 좋은 작품이 나오기도 하지만 상업적 목적으로 운영하는 구조이므로 기초적인 실력이나 최소한 작품의 구성요소를 갖추지 못해도 눈감고 등단을 시켜주는 것이 예사다. 그러나 시단의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 곳으로도 등단만 하면 시인이 되고 작가가 되는 줄 알고 있다. 물론 시인이나 작가로 성공한 사람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이런 곳으로 잘못 등단을 하면 그 잡지사를 벗어난 주류시단에서 인정 받기가 쉽지 않고 평생 2류, 3류라는 시인의 꼬리표가 따라다닐 정도로 작품발표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1. 시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시 전문지 인가?
2. 발행인, 주간, 공동주간, 편집 고문이나 자문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가?
3. 그 곳으로 등단한 사람들이 시단에서 제대로 활동하고 있는 곳인가?
4. 등단을 조건으로 금품을 요구하거나 등단작이 실린 잡지구입을 강매하지는 않는가?
시인이나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꼭 독자가 먼저 되어서 관련 책을 많이 읽고 공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 공부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은 독자에 대한 예의고 시에 대한 예의다. 필자의 <생명시 운동>은 그런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 운동을 다른 말로 하면 ''생활문학운동''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근래에 일고 있는 시낭송 열풍이다. 이를 통해 시가 우리의 삶에 들어오는 중요한 창구가 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현대시를 왜곡하는 일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시인들이 자기 시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남의 시를 외워서 낭송해 주고 독자와 공감하도록 하는 시 낭송가는 어줍찮은 시인들 보다 몇 배 훌륭한 일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나는 낭송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난해한 시는 독자들이 외면해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시의 지평을 넓히고 작품의 다양성을 위해 난해하거나 실험적인 시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전부인양 하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의 핏속에 흐르는 서정적 감성이나 운율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시단에 서정의 깃발을 다시 세우자는 운동이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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