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 창작 강좌 >
■ 현실 재구성의 시
시의 뿌리는 현실이라는 흙에 묻혀 있다. 시가 현실의 산물이긴 하지만 현실에만 머물면 시가 되지 않는다. 시 쓰기의 특성은 현실을 초월하는 것이며 그 초월성에 이상을 더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산문으로서는 힘을 갖지만 예술로서의 표현에는 한계가 있어서 언어의 아름다움을 깊이 드러내지 못한다. 물론 현실을 고발하는 시나 저항시가 있다. 그런 시들도 현실을 그대로 복사한 듯한 사실주의만으로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시에서의 현실 재현이란 현실의 재구성(Representation)을 의미한다. 그것은 시의 초점을 고정된 어느 시간이나 사물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우리 밴드에 올라온 회원 시 중에는 다음의 시를 보자.
불면 / 구영미
며칠 전 새벽
달과 이별을 했습니다 도로 건너 오래된 빌라 옥상 위에서
손을 흔들며 돌아서던 달 나는
오랫동안 긴 그림자를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새하얗게 비워진 생선의 부레 같던 달
다시 하루를 살았습니다.
시간은 늘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닌데 그 속을
걷는 나는 늘 숨이 찹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늘을 봅니다
깃털구름 촘촘히 뿌려진 하늘 달은
어디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디로 갔을까요,
사라진 달을 기다리는 일은 형벌 같습니다
아무도 오지 않는 복도 끝에서 손을 들고 벌을 서는, 친구들의 웃음소리로부터 소외된, 나는 혼자입니다
폐경도 우울증도 가끔 기웃거리고 손가락질하고.
문득 계속 이렇게 혼자인 채로 남게 될까 두렵습니다
또다시 새벽이 왔습니다.
구영미 회원의 위 시에서는 소멸의 미학과 상실의 시학을 보여주고 있다. '달과 이별을'했다든지 '시간은 늘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닌데 그 속을/걷는 나는 늘 숨이'차다는 등 여러 묘사에서 발견되는 하강의 심상은 본인이 처해있는 현실의 감각이 마음속에서 표출되는 다의적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다. 이런 것을 이미저리(imagery)라 한다. 또한 '계속 이렇게 혼자인 채로 남을까' 두렵다는 고백을 하지만 곧바로 '또다시 새벽이'왔다고 끝맺음으로써 희망이라는 불씨를 살려놓았다. 결국 '새하얗게 비워진 생선의 부레같던 달'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시간이나 사물이 아니라 상실감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구영미 회원이 시사모에 가입한 초기보다 글의 발전 속도가 빠르다는 점을 눈여겨 보고 있는데 시의 수준이나 완성도는 그동안 습작의 시간을 돌아보고 퇴고의 생활화를 통한 시적 구성을 단단하게 하면 꽤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소질이 보인다. 길게 쓴 시를 퇴고 과정에서 과감하게 덜어내면서 시가 무너질 것 같은 지점까지 가는 연습을 계속 해보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시가 완성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 다시 자신만의 김치독 같은 곳에 얼마간 묵혀 두었다가 몇 일, 혹은 몇 달 후에 다시 꺼내서 퇴고를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마츄어 시인은 성급하지만 제대로 된 시인의 시는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 최대공약수적인 시를 세상에 내어놓기 때문이다.
다음의 시는 필자의 산문시인데 약간 길지만 읽어보시기 바란다.
기념패에 들어가 / 이어산
남몰래 기념패에 들어가 숨어 있기로 했다 기념패 만들어 준 위원회는 사라지고 위원회가 추진했던 상징물은 산봉우리 하나로 솟아 있다 달이 가고 해가 가고 풀꽃이 피었다가 사라지고 다시 피려고 반짝이는 계절에 상징물은 더 높이 더 멀리 역사로 들어가고 있다 위원들은 제 일 제 자리로 가 역사와는 반대로 목련이 거듭 피거나 천리향 다시 향기로운 날에는 더 멀리 더 아래 현실의 바닥으로 내려 앉고 있다.
우리의 상징물에는 햇빛을 타고 천년이 와 쉬고 바람을 타고 파발마 소리 요란히 당도하는데 시민들은 모래알처럼 무명으로 무기명으로 상징물을 우러러 보면 그만이다 위원도 때로는 저 상징물 만들 때의 무용담을 골목 돌 때마다 메아리로 새겨놓고 싶지만 하늘은 높고 상징물은 나날이 푸르러 그저 아득하면 되리라 아득한 김치가 되어 뚜껑 닫힌 독에나 쟁여 있을 뿐이다
남몰래 기념패에 들어가 숨어 있기로 했다 돌을 져 나르던 날의 이름 석자와 돌을 져 나르던 날의 의미를 개괄해 놓은 문맥 몇 이랑에서 수건 머리에 쓰고 풀이나 매는 기념패 속의 생애를 살아 보기로 했다 역사는 제 상징물 이름표 달고 강의 상류를 쳐 올라가기도 하고 강의 하류나 선사시대 고분군으로 널뛰기하고도 지금 더 멀리 살아서 피로 흐르고 있다 거기 국중 위란(危亂)도 뜨고 논개도 뜨고 선비도 뜨고 경의(敬義)도 뜬다
오, 단색의 질펀 질펀이여 길가에는 개망초 꽃이 삼일 만세 대열로 질펀히 피어 있다 저렇게 일제히 난만히 어우러져 전신 무식으로.
위 시는 2003년 격월간 시사사에 발표했었다. 당시 필자는 큰 어려움에 처한 일이 있었기에 "기념패속에 들어가 숨어있기로 했다"라는 표현으로 더 이상 시작(詩作)활동을 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한 시인 셈이다. 사람의 삶이란 결국 과거에 묻혀지는 법인데 시를 쓴다는 것은 그런 경험들을 꺼집어 내어서 개인적 심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필자는 천년 역사를 간직한 도시에 살면서 그 역사에 돌 하나 더 갖다 얹은 이야기를 회상하고 개괄(槪括)하여 산문시 형태로 고백적인 시를 써나갔다. 그러다가 부도가 난 후 모든 문학활동을 접고 십년 가량 절필하다가 문제가 회복된 몇 년 전부터 다시 문학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에 비추어 우리 생활 속에서 충격적이거나 가치 있는 부분을 선택하여 그 속에 담겨진 삶의 현실을 반영하고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는데 까지 나아가야 비로소 시가 되는 과정을 소개하는 것이다. 지금 보면 고칠데가 많아서 다시 퇴고를 거쳐서 내놓을 생각이다.
좀더 시가 좋아지려면 다음의 작법을 참고 하는 것도 시로서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 될 것이다.
●시를 시답게 하는 세 가지 방법
1. 좋은 시는 좋은 사람이 쓸 수 있다.
시만 잘 썼다고 좋은 시가 아니다. 이것을 심리적 시인과 사회적 시인으로 나누어서 소개한적이 있는데 선천적으로 시적 감성이 풍부한 사람을 심리적 시인으로, 후천적으로 공부하여서 시를 쓰는 사람을 사회적 시인이라고 했었다. 어느 경우든 자기가 쓴 시에 못미치는 삶을 살면서 겉모습만 좋아보이는 것은 '짝퉁 시'라는 생각을 하기 바란다. 거짓 시는 자기가 썼어도 자기 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의 삶과 같이 가거나 그 시를 이끌어 가는 생활의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 쓴 시가 살아있는 생명시이기 때문이다.
2. 진지한 말놀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시는 드높은 언어 관습이다. 언어를 함부로 내뱉는 사람을 무례한 사람이라고 한다. 저급한 말을 시에 자꾸 차용하면 저급한 시인으로 각인된다. 될 수 있으면 말글의 진폭이 넓고 다채롭게 하되 진지하고 품격 높은 말글을 찾아내야 한다. 시를 쓰는 사람이 말글에 미숙하다면 치명적이다. 시는 끝까지 말글로 겨루어서 다른 익숙한 말글을 이기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오래 기억되는 시는 짧게 말하면서 품격있는 말놀이가 담겨 있어야 독자의 시선이 머물게 된다. 그런 시는 재미 있거나 품위 있고 삶의 창문에 멋진 커텐으로 사용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3. 고정관념으로 부터 매몰차게 떠나라
시의 자질은 낯설게 하기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렸다고 이미 수 없이 언급했다. 좋은 시란 적어도 손쉬운 고정관념으로부터 떠나는 일이다. 누구나 표현 할 수 있는 예사롭거나 일상적인 말, 흔한 소재, 통속적 사랑이나 그리움을 다룬 이야기, 결론이 뻔하거나 내용이 드러난 시는 실패한다. 즉 한 번에 그 뜻이 잡히지 않게 하고 자기가 쓴 시를 독자가 읽어내지 못할까봐서 설명하려고 하지 말라. 독자에게 시의 여운을 이어가도록 여백을 두라. 유명 시들을 보면 다 말하지 않고 반만 말하는 간결성을 어김없이 보여준다. 친절한 설명은 시를 발가벗겨 놓고 죽이는 것이다. 홀랑 옷을 벗기는 것이 아니라 단아하되 단출하고, 화려하지 않되 품위있는 옷을 입혀서 또다른 의미가 감춰진 맛이 있어야 좋은 시가 되는 것이다. 고정 관념에서 과감히 떠나지 못하면 십리도 갈 수 없고 행여 가다가 발병난다.
이어산, <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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