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 창작 강좌>
■ 시론의 선택
"시를 잘 쓰려면 어떻게 써야 합니까?"
나는 이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나는 명쾌하게 대답한다.
"그것을 제대로 알면 내가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시인이 벌써 되었을 겁니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시를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시가 되게 하는 최소한의 방법과 시를 쓸 때의 자세 등을 지난 30여 년 동안의 경험과 약간의 공부, 그리고 훌륭한 시인과 평론가들이 밝힌 시론에 내 생각을 더하여 부족하지만 내 나름의 시론을 갖게 되었다. 이 작은 경험과 지식을 시 짓는 방법을 공부하려는 우리 회원들에게 도움이 될까하여 소개하지만 이것 또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다. 그래서 나는 나의 시론이 옳다고 강변한 적이 없다. 다만 회원들의 취사선택에 맡길 뿐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새로운 느낌의 언어를 모시러 가는 가마를 준비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본다는 것이다. 또한 내가 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꽃이 나를 보고 말을 거는 것이며 내가 하찮게 여겼던 것들의 거대한 힘을 발견하곤 기뻐서 독자에게 보고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을 쓰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론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개울 바닥에 굴러다니는
조약돌을 줍는 일
수석을 즐기다가
기이한 돌을 발견하고
혼자서 즐거워 하는 일
시를 쓴다는 것은
대장간에서
풀무질을 하는 일
쇳덩이를 불에 달구어
담금질로 연장을 만들고는
이마의 구슬을 훔쳐내는 일
시를 쓴다는 것은
영혼의 맑은 이슬을 받으러
산사를 찾아 떠나는 일
텅 빈 절간을 헤매다가
잠자리에 들어서는
도인을 만나는 일
- 신용협, <시를 쓴다는 것은> 전문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지금 멀리서 개가 짖는다는 것
지금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
지금 어딘가에서 병사가 상처 입는다는 것
지금 그네가 흔들리고 있는 것
지금 이 순간이 지나가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새는 날개짓 한다는 것
바다는 일렁인다는 것
달팽이가 기어간다는 것
사람은 사랑한다는 것
당신 손의 온기
생명이라는 것
- 다니카와 순타로, <산다>부분
시인에게 있어서 시를 쓴다는 것은 “살아 간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시는 인생의 길에서 목마를 때 찾는 생수이며 앞이 캄캄할 때 켜드는 등불이자 죄인의 피난처고 혼탁한 세상에서의 호흡이고 고백이다. 그러므로 시는 내 삶과 같이 가는 자연스런 친구가 되어야 한다. 시를 억지로 쓸 필요는 없다. 정말 시를 사랑하는 사람은 한 줄이든 두 줄이든 내가 느낀 새로운 것을 그 때마다 호흡을 하듯 꾸준히 쓰는 사람이다. 그리고는 그 시의 씨앗을 밤낮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사랑과 정성으로 자꾸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겐 시의 씨앗이 때가 되면 반드시 발아하여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게 된다. 시를 꼭 써야하는 노동자가 될 필요는 없다. 또한 자기의 삶이 따라가지도 못하는 시를 쓰는 시 기술자가 되는 것도 허망한 일이다. 자기의 색채가 있도록 자기의 삶과 어울리는 시를 쓰자는 것이 <생명시 운동>의 주된 목적이요 시론이다.
"폼 잡고 사는 사람은 그 폼대로 살아진다"라는 말이 있다. 격은 좀 떨어지지만 "똥폼도 잡다보면 제폼된다"라는 속담과 같은 말이다. 시인이 되려면 시인다운 폼, 즉 시인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시를 쓰면 그 앎이 나를 시인의 길로 인도한다. 그런데 시인이 되는 것을 개인적인 욕망을 채우는 일, 또는 시를 장신구로 활용하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런 사람들을 유혹하여 시인의 이름을 사고 파는 사람과 매체도 많다. 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절제된 내용과 형식, 삶과 시가 같이 가는 진정성이 있을 때 시가 시다와 진다고 강조해 보지만 성질 급한 사람들은 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결국 시인다운 시인인지, 시인 흉내를 내는 시인인지는 백일하에 드러나고 만다. 아무리 시가 좋아도 사람으로서의 인격이 미달하면 그 시는 가짜 시고 가짜 시인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시를 좀 잘 쓰면 어떻고 못 쓰면 어떤가? 이름을 가리고 봐도 그 사람의 향기가 나는 시가 가장 좋은 시요, 그 시에 책임질 수 있는 시인의 삶을 사는 사람이 진짜 시인이라는 생각은 세월이 흐를수록 굳어져 가고 있다.
시에서 낯익은 내용은 시의 잡석(雜石)이므로 미련없이 버려야 한다. 시어가 특별한 말이 아니라 예사로운 말의 조합이지만 새로운 의미(작가의 진술)가 없는 시, 내용이 뻔히 드러나는 진부한 말의 조합은 시가 아니라 값싼 넋두리다. 시는 읽는 이의 가슴에 스며들되 읽을수록 맛이 나고 다른 각도에서 보면 또 다른 내용을 발견할 수 있는 중층묘사(重層描寫)의 묘미가 있어야 좋은 시라는 것이 현대시가 추구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시를 쓴다는 것은 시적 대상의 보이는 현상 뒤에 숨어 있는 세계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인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내용과 경험은 현상 뒤에 숨겨져 있는 또다른 거대한 세상에 비하면 정말 미미하다는 생각을 갖고 눈을 열어 찾아보면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이 산처럼 쌓여 있다. 그것을 캐내고 가공하여 보석으로 만들어서 독자 앞에 내놓는 작업이 시를 쓰는 일이다. 시의 광부는 익숙한 것들은 버린다. 그런 것을 버리지 못하면 시의 소비자인 독자는 그 광부가 펼치는 좌판을 외면한다. 온갖 사람이 팔아먹은 때 묻고 낡은 것엔 눈길을 주지 않는다. "왜 그렇게 독자를 의식하는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다시 말한다. 시를 발표한다는 것은 결국 독자에게 보여주고 같이 공감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내가 쓴 나의 이야기이지만 독자에게 외면 당하는 것, 눈밝은 독자도 공감하지 못하는 시는 시가 아니다. 자기 만족을 위한 시는, 자신의 넋두리를 일기처럼 써놓고 보고 싶을 때 자기만 보면 되기 때문이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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