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 창작 강좌>
■ 시에서의 철학과 생명시
지난주 강의에서 '묘사'에는 자기 주장이 없는 것이고 '진술'을 하기 위해 묘사가 있는 것이며, 진술엔 자기의 주장, 즉, 시인의 철학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했었다. 그 강의 글을 읽은 회원에게서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문자가 왔다. "철학적인 시가 좋은 시란 말이냐?"는 내용이었다.
시에서의 '진술'엔 시인의 철학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강조 한다. 그렇다고 시의 진술이 철학적인 용어에 얽매이면 안 된다. 시는 언어예술인 만큼 추상적이거나 전문적인 철학 용어를 지닌 개념적 의미 등은 피하는 것이 좋다. 17세기 시인들은 철학적인 형이상학을 즐겨 사용했다. 초월의 시, 우주적 상상력에 기반한 영원을 염원하는 시가 최고의 시인냥 평가 받았다. 이는 현대시에도 큰 영향을 주어서 지금도 그 방향을 옹호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시는 관념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라 사물에 있다. 그러므로 말하지 말고 보여줘라'고 할 만큼 요즘 시의 흐름은 현실성에 큰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철학'을 너무 어렵거나 고리타분한 것으로 생각하여 멀리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철학이란 깊고 오묘하여서 다 설명 할 수가 없다. 철학(哲學)을 영어로 표현하면 'philosophy'이다. 앞의 글자 'philo'라는 말의 어원은 '사랑하다'라는 뜻이고 'sophy'라는 말의 어원은 '지혜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연결하면 '지혜를 사랑하다'라는 말이 된다. 그러니 지식이 아닌 지혜로 시를 써야한다는 시 작법과 뗄래야 뗄 수도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자기가 직,간접으로 겪은 삶의 지혜, 즉 자기의 주장을 담지 않고는 나와는 상관없는 방향의 시가 되기 쉽다는 점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시인이 되는 기본 소양인 문사철(文學, 歷史, 哲學)을 어느 정도 공부하지 않고는 자칫 천박한 글을 쏟아내기가 쉽다는 점에 유의하기 바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철학적 용어가 아닌 시인의 철학을 담는 것이 시의 깊이를 더하는 일이 될 것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복받은 일이다. 세상의 많은 일들 중에서 가장 비경제적이면서도 가장 행복한 일을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시 쓰기를 말할 것이다. 전에도 말했듯이 연필 한 자루와 노트 한 권, 아니 요즘은 휴대폰만 있어도 나폴레옹이 그렇게 손바닥에 넣고 싶었지만 실패한 세상을 내 손바닥 안에 넣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시 쓰기의 지향점은 행복 쓰기가 되도록 하자는 입장이다. 세상 죄를 다 짊어진 듯, 천형의 고통을 품은 듯 시를 쓴다면 그런 시 쓰기를 그만 두라고 권하고 싶다. 그런 시를 즐겨 쓰는 사람은 그 쪽으로 가도록 내버려 두고 우린 시가 나의 세상살이에 활력소가 되고 희망이 되고 행복의 길잡이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시사모가 추구하는 <생명시 운동>의 기본이다.
가던 길
잠시 멈추는 것
시간 걸리는 게 아닌데
우리 집
마당에 자라는
애기똥풀을 알아 보는데
아홉해나 걸렸다
- 박희순, <참 오래 걸렸다> 전문
아동문학가인 시인의 마음은 이리도 고운 것일까? 고은 선생의 시, "내려 갈 때 보았네/올라 갈 때 못 본 그 꽃" 같은 느낌의 이 시에서 발견하게 되는, 인생의 쉼표 같은, 시가 주는 위로와 기쁨,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한 편 더 보자
허구한 날
베이고 밟혀
피 흘리며
쓰러져놓고
어쩌자고
저를 벤 낫을
향기로
감싸는지
알겠네
왜 그토록 오래
이 땅의
주인인지
- 민병도, <들풀> 전문
이 시는 들풀을 노래하면서 사실은 힘없고 이리저리 부대끼며 사는 서민들, 즉 민초를 형상화 한 것이다. 그러나 제목을 '민초'라고 했다면 시인의 마음이 드러나서 감동이 조금 약해졌을 것이다. 베이면서도 향기로 감싸는 아가페적인 사랑, 용서와 화해가 떠오르는, 읽고나면 가슴 따뜻한 시, 퍼내어도 퍼내어도 고갈되지 않는 소재가 우리 주위에 수도 없이 널려있다.
내친김에 한 편만 더 보자.
쉬잇, 가만히 있어봐
귀를 창문처럼 열어봐
은행나무가 자라는 소리가 들리지
땅이 막 구운 빵처럼 김 나는 것 보이지
으하하하, 골목길에서 아이 웃는 소리 들리지
괴로우면 스타킹 벗듯 근심 벗고
잠이 오면 자는 거야
오늘 걱정은 오늘로 충분하댓잖아
불안하다고?
인생은 원래 불안의 목마 타기잖아
낭떠러지에 선 느낌이라고?
떨어져 보는 거야
그렇다고 죽진 말구
떨어지면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어
칡넝쿨처럼 뻗쳐오르는 거야
희망의 푸른 지평선이 보일 때까지
다시 힘내는 거야
- 신현림, <너는 약해도 강하다>전문
위 시를 읽고 나면 뭔가 용기가 생기고 신발 끈을 다시 매고 싶지 않은가? 이 시는 시인이 자신에게 최면을 걸 듯 한 말일 것이다. 쉽게 읽혀지지만 시인의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다. 이 시에서 보듯 '귀를 기울이면 삼라만상이 나의 스승'이라는 생각을 시를 쓸 때 꼭 기억하기 바란다. 고통스런 삶을 이겨내는 시 쓰기가 좋을까? 아니면 그 고통 속에서 몸부림 치고 헤어 나오지 못하는 눈물의 시를 쓰는 것이 좋을까? 어린 아이도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너무나 간단한 이 답을 놔두고 많은 사람들이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 오늘도 시 쓰기에서 기억해야 할 몇 가지 방법에 대해 다시 소개한다.
1. 시의 첫 행은 시의 반이라는 생각으로 공을 들이자.
위에 소개한 세 편 시의 첫 행은 모두 자연스레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음에 주목하기를 바란다. 첫 행을 읽는 순간 시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지 못하면 그 시는 시시한 시가 되기 쉽다.
2. 행과 연의 구분에 유의하자.
형태는 시를 담는 그릇이다. 이것을 무시하면 간장 종지에 라면을 담은 꼴 같을 수도 있다. 행과 연을 반드시 이렇게 구분해야 된다라는 답은 없지만 이것을 제대로 해야 시의 맛이 살아 난다는 말이다.
대체적으로 기성 시인들은 다음과 같은 단락으로 구분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 리듬의 한 단락으로
* 이미지의 한 단락으로
* 강조의 단락으로
3.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말자.
꽃이 되는 말이 있고 칼이 되는 말이 있다고 할 때, 칼이 되는 폭력적 말을 쓰지 말자는 이야기다. '사랑'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삼류 소설이나 외설로 흐를 수 있듯. 비유적, 은유적, 암시적인 글이 시를 시답게 한다.
4. 사물을 볼 때마다 마음으로 그림 그리기 연습을 하자.
문학은 표현하는 언어 예술이다. 사물에 나와 상관있는 뭔가를 보태고 사실적인 부분과 상징적인 부분을 결합하는 그림을 그리듯 마음으로 그리기 연습을 많이한 사람이 더 깊고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 시에서의 철학과 생명시
지난주 강의에서 '묘사'에는 자기 주장이 없는 것이고 '진술'을 하기 위해 묘사가 있는 것이며, 진술엔 자기의 주장, 즉, 시인의 철학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했었다. 그 강의 글을 읽은 회원에게서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문자가 왔다. "철학적인 시가 좋은 시란 말이냐?"는 내용이었다.
시에서의 '진술'엔 시인의 철학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강조 한다. 그렇다고 시의 진술이 철학적인 용어에 얽매이면 안 된다. 시는 언어예술인 만큼 추상적이거나 전문적인 철학 용어를 지닌 개념적 의미 등은 피하는 것이 좋다. 17세기 시인들은 철학적인 형이상학을 즐겨 사용했다. 초월의 시, 우주적 상상력에 기반한 영원을 염원하는 시가 최고의 시인냥 평가 받았다. 이는 현대시에도 큰 영향을 주어서 지금도 그 방향을 옹호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시는 관념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라 사물에 있다. 그러므로 말하지 말고 보여줘라'고 할 만큼 요즘 시의 흐름은 현실성에 큰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철학'을 너무 어렵거나 고리타분한 것으로 생각하여 멀리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철학이란 깊고 오묘하여서 다 설명 할 수가 없다. 철학(哲學)을 영어로 표현하면 'philosophy'이다. 앞의 글자 'philo'라는 말의 어원은 '사랑하다'라는 뜻이고 'sophy'라는 말의 어원은 '지혜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연결하면 '지혜를 사랑하다'라는 말이 된다. 그러니 지식이 아닌 지혜로 시를 써야한다는 시 작법과 뗄래야 뗄 수도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자기가 직,간접으로 겪은 삶의 지혜, 즉 자기의 주장을 담지 않고는 나와는 상관없는 방향의 시가 되기 쉽다는 점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시인이 되는 기본 소양인 문사철(文學, 歷史, 哲學)을 어느 정도 공부하지 않고는 자칫 천박한 글을 쏟아내기가 쉽다는 점에 유의하기 바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철학적 용어가 아닌 시인의 철학을 담는 것이 시의 깊이를 더하는 일이 될 것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복받은 일이다. 세상의 많은 일들 중에서 가장 비경제적이면서도 가장 행복한 일을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시 쓰기를 말할 것이다. 전에도 말했듯이 연필 한 자루와 노트 한 권, 아니 요즘은 휴대폰만 있어도 나폴레옹이 그렇게 손바닥에 넣고 싶었지만 실패한 세상을 내 손바닥 안에 넣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시 쓰기의 지향점은 행복 쓰기가 되도록 하자는 입장이다. 세상 죄를 다 짊어진 듯, 천형의 고통을 품은 듯 시를 쓴다면 그런 시 쓰기를 그만 두라고 권하고 싶다. 그런 시를 즐겨 쓰는 사람은 그 쪽으로 가도록 내버려 두고 우린 시가 나의 세상살이에 활력소가 되고 희망이 되고 행복의 길잡이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시사모가 추구하는 <생명시 운동>의 기본이다.
가던 길
잠시 멈추는 것
시간 걸리는 게 아닌데
우리 집
마당에 자라는
애기똥풀을 알아 보는데
아홉해나 걸렸다
- 박희순, <참 오래 걸렸다> 전문
아동문학가인 시인의 마음은 이리도 고운 것일까? 고은 선생의 시, "내려 갈 때 보았네/올라 갈 때 못 본 그 꽃" 같은 느낌의 이 시에서 발견하게 되는, 인생의 쉼표 같은, 시가 주는 위로와 기쁨,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한 편 더 보자
허구한 날
베이고 밟혀
피 흘리며
쓰러져놓고
어쩌자고
저를 벤 낫을
향기로
감싸는지
알겠네
왜 그토록 오래
이 땅의
주인인지
- 민병도, <들풀> 전문
이 시는 들풀을 노래하면서 사실은 힘없고 이리저리 부대끼며 사는 서민들, 즉 민초를 형상화 한 것이다. 그러나 제목을 '민초'라고 했다면 시인의 마음이 드러나서 감동이 조금 약해졌을 것이다. 베이면서도 향기로 감싸는 아가페적인 사랑, 용서와 화해가 떠오르는, 읽고나면 가슴 따뜻한 시, 퍼내어도 퍼내어도 고갈되지 않는 소재가 우리 주위에 수도 없이 널려있다.
내친김에 한 편만 더 보자.
쉬잇, 가만히 있어봐
귀를 창문처럼 열어봐
은행나무가 자라는 소리가 들리지
땅이 막 구운 빵처럼 김 나는 것 보이지
으하하하, 골목길에서 아이 웃는 소리 들리지
괴로우면 스타킹 벗듯 근심 벗고
잠이 오면 자는 거야
오늘 걱정은 오늘로 충분하댓잖아
불안하다고?
인생은 원래 불안의 목마 타기잖아
낭떠러지에 선 느낌이라고?
떨어져 보는 거야
그렇다고 죽진 말구
떨어지면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어
칡넝쿨처럼 뻗쳐오르는 거야
희망의 푸른 지평선이 보일 때까지
다시 힘내는 거야
- 신현림, <너는 약해도 강하다>전문
위 시를 읽고 나면 뭔가 용기가 생기고 신발 끈을 다시 매고 싶지 않은가? 이 시는 시인이 자신에게 최면을 걸 듯 한 말일 것이다. 쉽게 읽혀지지만 시인의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다. 이 시에서 보듯 '귀를 기울이면 삼라만상이 나의 스승'이라는 생각을 시를 쓸 때 꼭 기억하기 바란다. 고통스런 삶을 이겨내는 시 쓰기가 좋을까? 아니면 그 고통 속에서 몸부림 치고 헤어 나오지 못하는 눈물의 시를 쓰는 것이 좋을까? 어린 아이도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너무나 간단한 이 답을 놔두고 많은 사람들이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 오늘도 시 쓰기에서 기억해야 할 몇 가지 방법에 대해 다시 소개한다.
1. 시의 첫 행은 시의 반이라는 생각으로 공을 들이자.
위에 소개한 세 편 시의 첫 행은 모두 자연스레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음에 주목하기를 바란다. 첫 행을 읽는 순간 시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지 못하면 그 시는 시시한 시가 되기 쉽다.
2. 행과 연의 구분에 유의하자.
형태는 시를 담는 그릇이다. 이것을 무시하면 간장 종지에 라면을 담은 꼴 같을 수도 있다. 행과 연을 반드시 이렇게 구분해야 된다라는 답은 없지만 이것을 제대로 해야 시의 맛이 살아 난다는 말이다.
대체적으로 기성 시인들은 다음과 같은 단락으로 구분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 리듬의 한 단락으로
* 이미지의 한 단락으로
* 강조의 단락으로
3.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말자.
꽃이 되는 말이 있고 칼이 되는 말이 있다고 할 때, 칼이 되는 폭력적 말을 쓰지 말자는 이야기다. '사랑'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삼류 소설이나 외설로 흐를 수 있듯. 비유적, 은유적, 암시적인 글이 시를 시답게 한다.
4. 사물을 볼 때마다 마음으로 그림 그리기 연습을 하자.
문학은 표현하는 언어 예술이다. 사물에 나와 상관있는 뭔가를 보태고 사실적인 부분과 상징적인 부분을 결합하는 그림을 그리듯 마음으로 그리기 연습을 많이한 사람이 더 깊고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글쓰기 공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 좋은 시인과 좋은 시 (0) | 2018.01.05 |
|---|---|
| ■ 시론의 선택 (0) | 2018.01.05 |
| ■ 묘사시와 진술시의 차이점 (0) | 2018.01.05 |
| ■ 시의 응시, 소재와 주제 (0) | 2018.01.05 |
| ■ 완성된 시란? (0) | 2018.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