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 창작 강좌> 제123강
■ 은유와 시의 수준
바둑계의 세계 정상을 호령하던 이세돌 9단과 중국의 커제 9단을 인공지능 컴퓨터 '알파고'가 차례로 무너뜨려서 우리를 놀라게 했던 게 얼마되지 않았다. 아무리 컴퓨터가 정교해도 온갖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바둑만큼은 인간을 뛰어넘지 못할 것이라던 사람들의 호언장담을 컴퓨터가 무참히 깨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바둑보다도 훨씬 복잡미묘한 인간의 서정적 감성으로 쓰는 시는 컴퓨터가 넘볼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도 수정되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일본과 미국에서는 이미 컴퓨터가 쓴 시가 나왔다. 아직은 조악한 수준이지만 기초없이 시를 쓰는 사람의 수준정도는 곧 뛰어 넘을 것이라니 시를 쓰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신간 시집을 쏟아내는 참으로 끔찍한 일이 일어나게될 수도 있다. 입력된 온갖 문학적 단어를 찾아내어 최상의 조건에 맞게 조립하면 어줍잖은 시인이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강의를 통해서 강조해 왔던 내용 중 일반화된 단어, 설명적, 묘사적 시는 이제 시 기계에 따라가지 못할 것이므로 시를 쓰고자하는 사람 스스로 시다운 시를 쓰지 않고서는 시인이 각광받는 시절이 사라질 수도 있다. 시다운 시란 기초가 튼튼해야지만 쓸 수 있다. 천부적인 재능으로 시를 쓰던 시대가 지났고 시인이 너무도 많은 현실이기에 더욱 그렇다.
시의 가장 중심적인 표현 방법은 '은유'다. 은유를 잘 한다는 것은 시를 잘 쓴다는 말과도 같다. 오늘은 시 쓰기의 기초를 좀 더 다지는 의미에서 은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자.
시에서의 '은유'란 말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은유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내용이 드러난 싱거운 시를 쓰게된 경험을 다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시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것이 '은유'이므로 '은유'가 갖고 있는 의미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은유'라고 번역하여 쓰고 있는 이 단어의 영어 원문은 메타포(metaphor)다. 그 원래의 뜻은 '옮김' 또는 '자리바꿈'이다. 예를 들어서 '불꽃 같은 사랑'은 직유가 되지만 '사랑의 불꽃' 이라는 언어의 자리바꿈은 한결 시적인 표현이 된다. 직유가 주종관계라면 은유는 이미지의 옮김, 즉 자리바꿈이다. 그것이 새로운 해석일 때 은유는 더욱 시적 빛을 발하는 것이다.
봄이여 눈을 감아라
꽃보다
우울한 것은 없다
ㅡ 김초혜, <봄>병상일기5 에서
위의 시는 봄 꽃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독자에게 새로운 충격을 준다. 꽃의 계절 봄, 그러나 병상에서 본 꽃은 생명의 절정이 아니라 곧 시들어질 꽃의 '우울'이다. 그것은 '꽃의 죽음'과 연관된다. <병상일기5>라는 제목과 이미지의 연관성은 은유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새로운 은유라도 되풀이해서 쓴다면 그것은 죽은 은유가 된다. 그래서 ''은유는 계속적으로 수명을 다해서 죽어간다. 쓸모없는 시인은 자기도 모르게 죽어가거나 죽은 은유를 사용하지만 훌륭한 시인은 끊임없이 새로운 은유를 창조한다'' 이 말은 이미지즘운동의 창시자인 흄(T.E. Hulme)의 말이다. 시인에게서 '은유'란 일회용이라는 뜻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새로운 은유를 창조하는 일이기에 그렇다.
종이컵이 좋다
환경을 사랑하는 그대들이 싫어할 이야기지만
오늘도 종이컵을 집어든다
이름이 없어 좋다
고뿌도 그라스도 아니고 잔이라 부를 수도 없는
그래서 뭐든 담을 수 있어
좋다
그대들은 혹여
담배꽁초나 타액이 들어 있는 와인잔을
맨정신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
그런 것들마저 허락하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단지 종이컵뿐이다
때로
버리는 사람들에게 0.001ppm의 독성으로 저항하는
자존심을 잃지 않기도 하지만
아무렇게나 물 위에 떠 흘러가고
불속에 던져져 오직 한순간 환하게 타오르는
종이컵이
나는 아니 나라면 아니 내가
좋다
ㅡ황정산, <종이컵에 대한, 종이컵을 위한>전문
계간<시와 편견> 공동주간으로 수고해 줄 시인이자 평론가인 황정산 교수(대전대학교)의
시다. 일회용 종이컵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파고들고 있다. 이 종이컵은 결국 화자로 치환되고 뭐든지 담을 수 있는 삼류인생 같고 때로는 이름도 없이 함부로 버려지거나 우유부단하여 물결치는대로 떠밀려 가지만 불속에 던져질 때에도 몸을 환하게 태워버리는 화끈한 존재의 이유, 와인잔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겠냐는 물음이고 뜻이 겹쳐있는 은유로 이루어져 있다.
은유를 찾는 두 가지 방법
1. 상식과 통념을 뒤집어 보거나 거꾸로 보라. 남들이 이미 알아내어 관념화 된 것이 아니라 나만의 생각, 나만의 체험으로 새로운 은유를 만들어라.
2. 내 생각의 초점이 아니라 대상, 사물, 사건에 생명과 자유를 부여하라. '땀을 쏟아내는 에어컨이 견디는 여름은 얼마나 고단할까?' 이렇게 사물에 생명을 부여하면 삼라만상이 내 친구가 되어 말을 걸어 온다. 받아 적어라.
생명의 순환 고리속에 윤회사상의 지독한 뒤집기를 보자.
사각의 공간에 구더기들은
활자처럼 꼬물거린다
화장실은
작고 촘촘한 글씨로 가득 찬
불경 같다
살아 꿈틀대는 말씀들을
나는 본다
ㅡ이대흠, <이동식 화장실에서 2>전문
세상에서 가장 추한 것을 부처님의 말씀으로 뒤집어 볼줄아는 눈, 그기에 은유가 감춰지는 것이다.
ㅡ 이어산, <생명시 운동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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