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제125강 시를 제대로 읽는 방법

귀촌일기 박뫼사랑 2017. 12. 25. 12:49

<토요 시 창작 강좌>제125강

   ■ 시를 제대로 읽는 방법

   중고등학교 시험 문제에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에서 '님'이 가리키는 대상이 무엇인가를 묻는 문제에서 정답은 '조국'이라고 한다면 그게 맞는 답일까? 일부는 '불교적 진리'라고 대답하기도 하는데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답을 강요하는 것은 시의 본질을 외면하는 잘못된 교육이란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시의 언어를 하나의 의미로 고정하면 오독(誤讀) 하기 쉽다. '시는 다의성(多義性)의 언어를 조합하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작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는 보통의 경우 문맥(文脈)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것도 정답은 아니다. 문맥도 사람에 따라서 해석을 달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의 언어는 최대한 축약하여 더 이상 축약할 수 없는 의미의 덩어리가 본질이다. 그리스철학자 데메트리오스(Demetrius)는 “시의 언어란 먹이를 덮치기 직전에 몸을 최대한 웅크린 야수와도 같다”고 기원전에 이미 설파 했는데 참으로 절묘한 해석이다. 토끼 한 마리를 잡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호랑이처럼 시의 언어란 이렇게 최대한 웅크렸다가 폭발적으로 펼쳐지는 힘이 있어야 좋은 시가 된다. 의미를 펼쳤을 때 확장성이 있는 힘 있는 시가 좋은 시란 뜻이다. ‘낙화’의 시인 이형기 선생은 “시는 활짝 열려있는 언어”라고 했는데 언어의 다의성(多義性)을 말한 것이다. ‘다의성’이란 애매함을 낳는 말이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 될 수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누가 “산이 어디 있는가?”라고 했을 때 산(山)을 물었을 수도 있지만 필자의 이름인 ‘어산’을 줄여서 물었을 수도 있고 또는 무엇의 애칭일 수도 있는 것처럼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가 될 수도, 다양한 의미로 해석 될 수 있는 것이 시란 이야기다. 그러므로 학교에서 변별력을 가린다는 명분으로 시의 갈래, 성격, 제재, 주제, 특징으로 나눠서 정답을 강요하는 것은 살아 있는 시를 감성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지성으로 해부하여 오히려 시를 죽이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공부를 한 사람은 시는 복잡하고 어려운 것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시는 살아있는 채로 봐야한다. 미인은 한 눈에 봐도 미인인 것처럼 시도 읽어보면 유행가 같은 통속적인 것인지 세미클래식인지 클래식한 것인지 웬만한 독자들은 느낄 수 있다. 한 소절씩 음악을 감상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차라리 프랑스처럼 초등학교 때 외울 시, 중고등학교 때 외울 시의 범위를 정해놓고 시의 제목만 제시하여 외운 시를 쓰게 한다면 우리의 시가 부담 없이 독자와 가까워질 수 있는 바탕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필자가 이곳에서 몇 번 언급했지만 ‘진정한 독자 한 사람은 고만고만한 시인 열 사람보다 낫다’라는 생각이 요즘에는 더욱 확신이 간다. 시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은 제대로 된 시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강좌는 시를 읽어내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고 시를 제대로 알고 써보자는 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크게 유행되고 있는 ‘시낭송 바람‘은 시사모의 ’생명시운동‘이나 ‘독자운동’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혹자는 수준 높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시낭송 시’를 구분해야 한다며 홀대하기도 하지만 시낭송 붐을 타고 시가 우리의 정서에 그대로 스며들어 독자의 수준에 따라서 나름대로 위로와 치유와 감동을 준다면 이기적인 시인들 보다 훨씬 우리의 시를 발전시키는 일일 것이다.


   해 지는 하늘에서
   새들이 빨려 들어오고 있다, 벌겋다, 한꺼번에 뚝뚝, 선지빛으로 떨어지는 하늘의 살점 같다

   한바탕 소란스러운 저 장관
   창원공단 퇴근길 같다

   삶이 박아놓은 가슴팍 돌을 텀벙텀벙 단체로 시원하게 물속에 쏟아내는 몸짓 같다. 온몸으로 그렇게
   삶을 꽉 묶어놓은 끈을 풀고
   집으로 돌아오는 가장들,
   그 질펀한 힘이 선혈 낭자한 시간을 주남저수지 물바닥에까지 시뻘겋게 발라놓았겠다

   장엄하다, 이 절정의 파장
   삶의 컴컴한 구덩이조차도 생명의 공명통으로 만들 줄 아는

   저 순하고 아름다운 목숨들,
   달리 비유할 것 없이 만다라의 꽃이다
   저 꽃 만져보려고 이제는 아예 하늘이 첨벙 물속에 뛰어드는 저녁이다
                         - 배한봉, <주남지의 새들> 전문


   지난 목요일 격월간<시사사> 공동주간인 배한봉 시인이 자신의 여섯 번째 시집 <주남지의 새들>을 보내왔는데 먼저 표제시(標題詩)를 읽고 다른 시를 찬찬히 읽어가는 동안 나는 무릎을 쳤다. “인간 삶과 자연의 아름다운 조화, 생명력의 본질적 순수를 향한 도정에 시가 있기를 나는 늘 소망했다”는 시인의 말처럼 그의 시편들은 자연과 공존하는 사람들의 삶을 염원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생태시인’이란 말이 새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시는 대한민국의 압축 성장에서 파생된 여러 문제를 날카로운 눈으로 응시면서도 곳곳에 퍼져있는 매캐한 연기를 정화시켜주는 신선한 공기 같다.

   위의 시에 담긴 의미는 여러 가지이지만 자연과 노동자들의 삶을 연관 지어 자연과 인간의 생명에 부여받은 존재의 의미를 ‘만다라의 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 더욱 눈길이 간다. 모든 덕을 두루 갖춘 경지에 이를 때를 말하는 만다라! '순하고 아름다운 목숨들'이 '만다라의 꽃'이라는 시인의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이 가슴 뭉클하게 했다. 이런 시를 읽으면서 시의 갈래, 성격, 제재, 주제, 특징이 어떻다는 설명을 붙이면 오히려 감동을 죽이는 일이다. 물론 시를 처음 쓸 때 기초 작문법을 익히면 더욱 좋은 시를 쓸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좋은 시를 많이 읽어보되 할 수만 있다면 시를 통째로 외우는 것이 그 시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요 시의 실력을 쌓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신경림 시인은 82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1천여 편의 시를 외운다는데, 강인한 시인은 74세인 지금도 하루에 1백 편 이상의 시를 읽는다는데……

            - 이어산, <생명시 운동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