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 창작 강좌> 제97강
■ 자존심과 좋은 시 쓰기
카네기는 성공의 비결은 '찬스를 잡는 일'이라고 했다. 그렇다. 성공하는 사람을 연구해 보면 거의가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포착하여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는 사람이다. 기회가 왔는데도 자존심 세우고 이런저런 온갖 계산을 하거나 우물쭈물 우유부단한 사람은 성공의 기회도 지나가 버린다. 기회의 포착은 감(感)이다. 감을 잘 잡는다는 것은 그만큼 평소 훈련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시 창작도 마찬가지다. 시적 모티프(motif)도 감이 왔을 때 잡아야 한다. 그 순간을 놓치면 시 창작의 찬스를 잃게 된다. 그래서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자기 고집 때문에 찬스 잡기도, 시 쓰기도 쉽지 않다.
오랫동안 길들여져 왔던 생각이나 습관을 고정관념이라고 한다. 시 창작 모임을 해보면 나이가 든 사람이 고정관념이 센 경우가 많지만 가끔 젊은 사람도 고정관념이 심한 경우를 보게 되는데 의외로 평소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많다. 그런데 정말 똑똑한 사람은 배우려는 자세, 즉 '찬스'라는 감(感)을 잡을 준비가 된 겸손하되 적극적인 사람이다.
오래 전부터 이 강좌에서 강조했듯 시 쓰기는 익숙하거나 나의 편협한 고정관념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일이고 새로움을 창조하는 말(言語)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다. 지금의 시대는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고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특히 시를 쓰는 사람은 어제의 생각이 옛 생각일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항상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집이 좁아서 새로운 시가 들어올 공간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자존심이 굳어있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생각이 들어갈 공간도 없다. 시도 마찬가지고 밴드의 모임도 마찬가지다. 고정관념이라는 낡은 집을 허물지 못하면 새로운 집을 세우기란 불가능 하다. 우리 시사모에서도 자기의 고정관념으로 이 모임을 재단하고 자기의 경험과 의견이 반영되지 않으면 판을 흔들려는 사람이 몇몇 있었다. 시사모의 존재 이유를 잘못 해석한 탓도 있겠지만 그동안 운영되어 온 과정을 봐도 빨리 감을 잡지 못한 경우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조건없는 사랑을 나눠준다고는 했지만 혹 우리의 방법이 서툴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떠한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 조건없이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부족한 재능이나마 나누려는 이곳의 성격에 대한 감이 잡히지 않으면 이 모임에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다. 그러나 같이 가도 될 것 같은 감이 잡히면 열심으로 가 볼 일이다. 멀찌감치 따라가는 것도 우유부단에 해당될 수 있다. 이것은 당신이 독자이거나 시인이거나 시인을 꿈꾸는 사람인가에 관계없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좋은 모임은 회원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찬스를 잡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여기에 시를 올린 사람들은 댓글로 조언을 해주면 고마워하고 시 창작에 참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네가 뭔데?''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가끔은 있다. 심지어는 이번에 발행되는 우리 무크지 <시와 편견>에 실릴 원고청탁을 몇몇 회원에게 했는데 보내온 시 중에서 어색한 부분 때문에 조심스레 퇴고를 부탁한 것을 거절하고 시를 싣지 않겠다고 통보해온 사람도 있었다. 물론 기성 시인들에겐 이런 요구를 한다는 것은 결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곳은 공부하는 곳임을 누누히 강조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시와 편견>이 창간되었기에 우리나라 시단에서 실력으로 꽤 인정받는 시인들이 지극히 기초적인 것을 지적하는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존심이라면 앞으로 어떻게 시를 써나갈 것인가에 염려가 되기도 했었다.
1. 좋은 시의 개념
시를 배울 때 꼭 마주치는 시인 워즈워드는 ''좋은 시란 강한 감정이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것''이라 했다. 또한 엘린 포우는 ''아름다움을 운율로 창조한 것''이라고 했다.
'강한 감정'이란 무엇일까?
바로 언어의 핵심(核深), 또는 언어의 씨앗, 알맹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연스러움'이란 억지스런 꾸밈, 거짓이 없고 어색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동양 시학의 핵심인 공자의 사무사(思無邪/생각에 거짓, 사특함이 없는 상태)와도 뜻이 통하는 말이다. 즉 진실한 언어가 아니면 감동을 줄 수 있는 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시'란 무엇인가?
소설은 갈등이 전제되는 형식이지만 시는 본질적으로 언어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양식이다. 어떠한 대립이나 어긋남이 없이 서로 어울려서 최상의 상태로 조립된 언어의 형태, 이것이 시에서 말하는 아름다움이란 것이다. 그러므로 조화가 깨어진 것은 아름답지 못하다는 말이된다. 지난주 강의에서 강조한 '4단 시'에서 시 짓기의 핵심은 언어를 조화롭게 조립하는 것이라고 했던 것과 연결되는 말이다. 우리의 언어구조상 잘 어우러진 언어에는 리듬, 즉 운율이 있다. 요즘의 시에서는 이미지를 너무 중시한 나머지 산문시 형태가 많이 나타나지만 산문시에서도 본질적으로 율동적 리듬을 무시하면 시로서의 중요 요소를 갖추지 못하여서 시로 봐주기가 어렵게 된다.
2. 다시 시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그동안 많은 시론으로 답을 찾았지만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과 같기에 시사모의 이 공부는 시 짓기의 답을 각자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좋은 시란 '아름다운 것'이고 '율동 적인 것'이라고는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하다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 아름다운 얼굴이 '형식'이라면 아름다운 마음은 '내용'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시는 '아름다운 글'만으로는 절대 완성되지 못한다. 즉 스스로 아름답지 않으면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없다는 말이다. 마음이 사특하고 주변의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이 쓴 시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아는 사람이 봤을 때 그 시를 잘 썼다고 하겠는가? 오히려 ''시는 번드러지게 쓴 나쁜 사람''으로 더욱 강렬하게 기억될 것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은 성스러운 것''이라고 게오르규는 정의했다. 미(美)와 성(聖)은 하나라는 말이다. 그는 또 ''탁월한 아름다움은 발가벗더라도 음란해 보이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내용과 형식을 두루 갖춘 경지의 시에서 맛볼 수 있는 차원이다.
해우소 입구에 서 있는
노송 한 그루
풍파를 견뎌내고 얻은 깨달음인가
중생들 번뇌를 피안으로 이끌듯
삼백년 째
제 속을 파내고 파내어
두 사람 들어갈 만한
뜨거운 법당이 되었다
저녁 예불소리를 밟고 온
남녀 한 쌍
노송 법당으로 들어간다
기도는 서로를 찾는 긴 포옹
뜨거운 입맞춤
저들의 숨소리는 청춘의 고백조
우듬지 산새들이 법문을
크게 읽고
달은 제 몸을 숨겨 어둠처럼 아늑한데
법당은 자비롭고
상구보리 하화중생*
청춘의 참선
나의 푸르른 날
긴긴 겨울동안
사랑했던 사람 힘껏 안아준 기억도
뜨겁던 입맞춤도 사라진지 오래
채우기에 급급했던 지금의 나이테
파내고 파내어
자비로운 저 노송처럼
서 있을 수만 있다면
막무가내 사랑에게 내어줄
자리하나 만들어줄 수 있다면.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부처님의 지혜를 구하고 나의 이익만을 쫓지 않고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해 보시를 행한다는 뜻
- 이어산 졸시 <다솔사 연애나무> 전문
이 시가 음란해 보이는가?
이런 내용의 시를 잘못 쓰면 저질스럽거나 혐오스럽기도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둑한 때 다솔사 해우소 입구의 노송이 내어준 뜨거운 법당에서 시 한 편을 뽑아냈다. 해우소는 근심을 풀어내는 곳인데 직설적이지 않고 이미지로 연결되어서 구조와 내용과 형식의 짜임새가 들어 맞는다면 논리적 의미가 생긴다, 즉 산문으로도 고쳐 쓸 수 있는 합리적인 내용으로 시를 조립해야 시가 된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기독교인이다. 그러나 신앙을 지녔다고 할지라도 타 종교에서 파생되는 문화에 대한 몰 이해는 시인의 고정관념에 다름 아니다. 고정관념은 근본주의적 몰 이해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정통 기독교단이나 불교, 또는 이슬람에서 세운 대학에는 비교종교학과가 있다. 세상의 크고 작은 다툼이나 모든 전쟁은 몰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대로 된 시인이라면 세상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 깊은 응시로 시의 감(感), 찬스가 오면 잡는 능력이 바로 시를 쓰는 경쟁력이다.
뜬구름 잡는식의 관념적인 시를 멀리하고 이야기가 있도록 시를 쓰는 연습을 하다보면 자기의 시풍이 정리된다. 몇 번 이야기 했듯 시만 된다면 시를 쓸 수록 시가 여물어 진다. 잘 쓰려고 하지 말라. 시가 되도록 이야기 구조로 잘 조립하는 노력을 쉬지 않는다면 당신은 분명 좋은 시인이 될 것이다.
- 이어산, <생명 시 운동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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