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 창작 강좌> 제95강
■ 시인과 독자
우리 밴드에 시를 발표하는 사람치고 누군가가 읽어주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끔 독자를 의식하지 않고 맘 가는대로 시를 쓴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독자를 의식하지 않은 시는 발표할 필요가 없다. 혼자 즐기면 될 일이다. 세상의 모든 명작은 그것을 읽고 감탄하는 독자들에 의하여 태어난다. 글쓴이가 아무리 명작이라고 우겨도 독자가 감동하지 않는 명작이란 세상에 없다. 모리스 불랑쇼 (Maurice Blanchot)는 ''글을 읽는 독자는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지만 글의 모든 것을 완성시키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즉, 시의 완성이란 독자와 시인의 제대로 된 합일(合一)을 통해서 이루어 진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시를 읽어주는 독자는 시인보다 위대하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독자에게 읽혀지는 시란 어떤 것일까?
시는 다른 종류의 글에 비해 말로 표현 된 것보다 말하지 않은 부분이 더 많이 내포되어 있는 문학 양식이다. 시인은 의미를 보여주지만 다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일정 부분을 숨긴다. 이것이 시의 묘미이며 매력이다. 독자는 이 숨겨진 시적 미감을 맛보기 위해 시를 읽는다. 시를 읽다 보면 내용이 이해되는 시가 있고 그렇지 않은 시가 있다. 그 중에서 우리는 어려운 시를 기피하고 쉬운 시를 선호한다. 그것은 어려운 시를 애써서 해석하는 수고로움이 싫은 것이다. 그러나 쉬운 시만 선호한다면 결코 새로움과 신선한 미적 성취도,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시를 만나는 일이 점점 어렵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서 훼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영화로 보거나 톰슨시트의 소설 '황금 연못'을 연극으로 봤을 때, T.V에서 보는 '개그 콘서트'보다 즉각적인 즐거움이 덜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작품의 품위와 깊이는 '개그 콘서트'가 뛰어 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용혜원이나 류시화 유의 쉽게 이해되는 통속적인 시를 좋아하는 사람과 백석이나 김명인 유의 군소리를 용납하지 않고 음미할수록 맛이 나는 시를 좋아하는 사람만큼의 차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각종 신춘문예나 시 전문지에서 내어놓는 시들을 보면 어떤 것은 몇 번을 읽어도 이해하기 힘들고, 또 어떤 것은 감동은 없고 어려움만 있는 시를 작품성이 있다라는 설명을 덧붙혀 버젓이 내어놓기도 한다. 이해되지 않는 시를 감상한다는 것은 독자의 입장에선 괴로운 일이다. 물론 독자의 수준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언어의 운용미, 새로운 감동, 시적 가치가 있어서 우리 기억 속에 오래 머물게 되고 내 삶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시가 시다운 시라는 정의는 결코 부정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시사모가 추구하는 방향도 바로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독자가 시를 읽는다는 것은 나와는 무관한 타인의 고백을 듣는 행위다. 그런데 그 고백이 나의 정서를 자극하지도 못하고 지루하거나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 고백을 듣고 있겠는가? 시가 되려면 시적 구성 요건을 채워야 한다.
미식가로 유명한 브리야 사바랭(Brillat-Savarin)은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라고 했다. 또한 그는 ''동물은 삼키고, 인간은 먹고, 삶을 아는 사람은 즐기면서 먹는다''라고 했는데 이 말들은 시를 대하는 우리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시를 왜 제대로 써야하며 시를 왜 제대로 읽어야 하는지를 대입해 볼만하다.
1. 내 시가 독자에게 말을 걸고 있는가?(공감되는 적절한 감정 이입이 있는가?)
2. 내 시는 절제되고 차분한 어조인가?(냉철한 언어의 밀도는 있는가?)
3. 내 시가 폭력적이지는 않은가?(최상의 시어인가? 더 순화될 적절한 시어는 없는가?)
4. 독자가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여백의 미는 있는가?(독자의 공간을 반드시 남겨두라. 내 주장으로 끝나는 시는 독자와 상관없는 시다. 그러므로 될 수만 있다면 완결 어미인 ~다로 끝내지 말라)
위의 네 가지는 보통 시 작법에서 많이 인용되는 창작론이다. 특히 서정시는 내적 고백을 지향한다. 사건과 상황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자제하고 자신의 감정을 살짝 보일만큼 숨겨놓고 독자가 그 모습을 짐작토록하는 문학양식이다. 즉 초점이 사건(현상, 묘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절제된 감정고백(진술)에 있다. 그래서 실력가들의 시는 대체적으로 담백하다. 그러나 우리 밴드에 올라오는 시 중에는 현학적인 것이 의외로 많다. 현학적이란 스스로 자기를 뽐내려는 지식이나 화려한 문체를 말한다. 이런 것은 오히려 시가 되지 않는 교조적, 또는 장광설이 되기 쉽다. 혹 시가 된다고 해도 통속적인 시로 흐를 개연성이 농후하다. 독자는 화자의 목소리와 태도에 따라서 공감할 수도,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다. 독자는 시인의 명성만 듣고 미리 공감하는 자세로 시를 읽는 태도도 버려야 한다. 이 말은 수준이 낮은 시에는 비판을 가할 줄도 아는 독자가 되자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는 시를 자꾸 접하는 수 밖에 없다. 시인이나 독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태도는 시 읽는 행복과 시를 쓰는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수준에 이르는 노력이다. 억지로 읽지도 말고 억지로 쓰지도 말라. 시가 내 인생에서 좋은 동반자가 되게 하는 방법은 시를 사랑하는 마음과 삼라만상을 시적으로 해석하는 자세, 그리고 행복해질 마음의 준비다.
눈 올 듯 말듯
햇빛 날듯 말듯
포장마차 집에서 막소주 한잔, 꽃가게 가서 실없는
농담, 시계방 물끄러미 들여다보기, 돌아와서 눈물 찔끔,
그리고 다시 또 소주 한잔,
행여 동백꽃 실려올까,
불현듯 달려가 본 간이역 플랫폼.
남녘에서 오는 열차는 멎지 않고
오늘도 벌써 해 저무는데,
우체부 올 시간은 지났고
아직도 누군가
올 듯 말듯.
- 오세영, <겨울 한 나절> 전문
사실 유명 시인의 시와 내가 쓴 시가 별로 차이가 나지 않거나 오히려 내 시가 훨씬 좋아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위 오세영 시인의 시처럼 담담하고 별 볼 일 없는 일상을 적은 시도 자꾸 읽어 보라. 왜 이 시가 좋은 시인지 계속 생각해보고 댓글로 감상을 적어주기 바란다.
두 분을 선정하여 시집을 선물로 보내드리려 한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47>
'글쓰기 공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제97강 자존심과 좋은 시 쓰기 (0) | 2017.12.25 |
|---|---|
| 제96강 아마추어 시인, 4단 시인 (0) | 2017.12.25 |
| 제94강 언어 산책과 시 쓰기 (0) | 2017.12.25 |
| 제93강 현실 참여시와 치유의 시 (0) | 2017.12.25 |
| 제92강 시와 비시(非詩)의 구분 (0) | 2017.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