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제67강 빨리 시인이 되는 방법

귀촌일기 박뫼사랑 2017. 12. 25. 11:51
<토요 시 창작 강좌>제67강

■ 빨리 시인이 되는 방법

   시 창작교실에서 여성 수강생이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솔직히 빨리 시인이 되고 싶은데 방법이 없나요?" 사람들이 막 웃었지만 그 사람의 물음은 모두가 궁금해 하는 것임을 나는 알면서도 이렇게 대답했다. "시인이 빨리되는 방법은 쉽습니다. 시를 빨리 발표하면 시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만 어떤 시인이 될 것인가는 별개 문제입니다"
   우리 밴드 회원들도 궁금해 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오늘은 같이 생각해 보기로 하자.

   ● 어떤 시를 쓸 것인가?

    시는 문학 가운데서도 가장 엘리트 갈래다. 쉬운 것 같으면서도 심오하고 얕은 것 같으면서도 깊고 넓고 어려운 것이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가 갖는 무게는 문학의 으뜸자리에 놓이는 것이다. 대학의 문창과에서 시에 대한 전문 공부를 한 사람도 시가 어려워서 시인의 길을 포기하는 이가 많은데 사회인이 시인이 되려고 한다면 그만한 각오와 노력이 없으면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요즘은 시인이 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고 시를 공부 할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이 있기에 쉽게 포기할 일도 아니다.
   현대 시문학의 흐름은 시를 크게 세 자리로 나누는데 대중시와 교양시, 전문시가 그것이다. 당신의 헌재 위치는 어디에 있으며 어떤 갈래의 시를 앞으로 쓸 것인가?

   1. 대중시(인)
       말 그대로 대중이 가장 쉽고도 널리 받아들일만한 평균적인 생각과 느낌의 시를 말한다. 자연 풍광이나 낯익은 체험과 사랑, 그리움, 인간사를 유행가처럼 쉽게 읽혀지도록 쓴 시다. 시의 깊은 맛 보다는 표피적 감성을 자극한다. 주로 자기 만족과 자기 위로, 그리고 정물화 같은 서술적 시가 많다. 처음 시를 쓰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머무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자기를 꾸미고 자랑하는 의도로 시를 쓰는 사람도 이 자리에 많다. 시를 유행시키는 대중적 문학으로서의 순기능도 있으나 전문시의 높이를 낮추거나 창조적 문학성을 홀대하여 결국 시문학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또한 대중시는 유행가처럼 일반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고 봉사하는 기능도 분명히 있지만 시를 상업적 목적에 이용하는 저질 매체들이 발호하기도 한다. 이런 매체들은 시를 완성한 것이 아니라 끄적이는 수준의 사람에게도 시인이라는 이름표를 팔아먹는 웃지못할 일들이 벌이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널리 유통되는 시의 소비처이기에 류시화 시인이나 이해인 수녀님처럼 크게 인기를 얻고있는 스타시인이 등장하기도 하는 등 그 나름의 시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2. 교양시(인)
       좁게는 우리 삶의 발밑에 놓인 소박한 감수성과 넓게는 사회적 담론을 새로운 언어로 해석하여 삶의 품격을 높이는데 이바지 하려는 시인이 많이 머무는 자리이기도 하다. 대중적이고 복제적인 유행가 같은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인격적 상상력에 의해 현대적인 서정, 또는 성찰담론과 시론시(詩論詩)등을 끊임없이 생산하는 시인들의 활동 공간으로서의 가치가 크다. 시가 사회적 정합성(社會的 整合性)과 내면적 정당성(內面的 正當性)을 얻기위한 자의식과 맞물려 "시는 나에게 무엇인가?" "나는 어떤 시인으로 살 것인가?"라는 고심과 자기다운 목소리와 맵시를 내기위해 익숙한 것과 고정관념과의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현장이기도 하다. 앞으로 시의 시대가 무르익는다면 몇몇 천재들 때문이 아니라 시와 시인의 걸음걸이가 합일하는 이들에 의한 것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교양시는 우리 밴드가 지향하는 시의 방향이기도 한데 그동안 한국 시의 품격을 이끌어온 많은 시인들이 이런유의 시를 즐겨 써온 사실이 말해주듯 우리시의 본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3. 전문시(인)
       "시대에 걸맞지 않은 예술이야말로 '참'일 수 있다"라는 진보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문화가 발전하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역사를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근대시가 낭만주의 전통에 뿌리내린 개성론과 개인정서의 표출, 또는 시적 허용이라는 소극성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라면 '전문시'는 그런 현실을 과감히 탈피하여 창조적 모험심으로 소재론과 주제론을 심화, 확대시켜서 세상을 수직, 수평적 교직위에 세우고자하는 전방위적이고 실험적인 시의 걸음걸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그 난해성으로 인하여 독자가 시에서 떠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새로운 지식 정보 사회에서의 창조적 지경을 넓혀가고 있는 점은 우리 미래의 시문학을 선도하는 순기능의 부분을 분명히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많은 매체와 평론가, 유명 시인들은 이런 '전문시'의 깊이와 넓이의 심오함을 애써 발굴하여 이것이 작품성의 척도인양 대중시나 교양시에도 그 잣대를 들이대어서 시의 저변확대를 가로막고 있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시'가 갖는 엘리트 문학의 선도적 기능을 우리는 관과할 수는 없다.
      
   오늘 위에 소개한 시의 갈래에서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를 우선 결정하고 그 갈래에 서있는 선배시인 중에서 당신의 시심, 즉 정서에 맞는 시인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물론 시를 쓰다보면 처음에는 대중시에 머물다가 교양시로, 다시 전문시로 자연스레 이동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를 쓴다는 사람이 자기가 어느유의 시를 쓸 것이며 어느 시인을 뛰어 넘을 것인가를 정하지 않고 되는대로 시를 쓴다는 것은 목표를 정하지 않고 길을 나선 것 같은 지극히 아마추어적인 것이다. 그리고 여러 종류의 시집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를 본격적으로 쓸 것이라면 나의 정서에 맞는 시인 한 두 사람을 꼭 만들기 바란다. 그 시인의 시집에 실린 시들을 달달 외울 정도가 되고 누가 옆구리만 건드려도 그 사람 시가 툭 튀어 나올 수 있어야 비로소 그 사람유의 시를 쓸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당신은 그 시인유가 아니라 당신만의 색깔이 차츰 드러나게 되고 개성있고 살아있는 튼튼한 시를 생산하는 시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시를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시를 제대로 쓰려면 어떤 시인이 어느 갈래의 시를 쓰는지, 나는 어떤시를 쓸 것인지 정도는 이해하고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서 쓸 수 없듯 시가 받혀주지 않는데도 시인이 되려는 것은 모래위에 집을 지으려는 것과 같다. 시는 정도(正道)로 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그 길을 같이 가보자고 이 밴드를 운영하는 것인데 안타까운 것은 자꾸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만 할 뿐 적극성이 결여된 회원들이 눈에 많이 띈다는 사실이다. 적극적인 사람에겐 기회도 빨리 온다.

   이어산, <생명시 운동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