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제66강 시와 현실

귀촌일기 박뫼사랑 2017. 12. 25. 11:50

 <토요 시 창작 강좌 > 제66강

   ■ 시와 현실

   시의 뿌리는 현실이라는 흙에 묻혀 있다. 시가 현실의 산물이긴 하지만 현실에만 머물면 시가 되지 않는다. 시 쓰기의 특성은 현실을 초월하는 것이며 그 초월성에 이상을 더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산문으로서는 힘을 갖지만 예술로서의 표현에는 한계가 있어서 언어의 아름다움을 높이 드러내지 못한다. 물론 현실을 고발하는 시나 저항시가 있다. 그런 시들도 현실을 그대로 복사한듯한 사실주의만으로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시에서의 현실 재현이란 현실의 재구성(Representation)을 의미한다. 그것은 시의 초점을 고정된 어느 시간이나 사물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우리 밴드에 올라온 회원 시 중에는 다음의 시를 보자.

   (퇴고)

   불황 /  이정아


   쇼 윈도우  너머는
   뙤약볕

   오늘도 지나가는
   행인 1을 유혹한다
   힐끔거리기만 한다

   행인 2를 유혹한다
   주머니만 만지작거린다

   행인 3을 유혹한다
   얼굴에 쟂빛 그늘만 수북하다

   행인 4를 유혹한다
   도도한 자태로 째려본다

   행인 5를 유혹한다
   입맛만 다시고 있다

   도저히 안되겠다
   삐걱거리던 한쪽 팔이
   마침내 백기를 들었다
   내다 버릴 수도 그냥
   둘 수도 없는 외팔이가 되었다
   궁리 끝에
   차라리 남은 한쪽 팔도
   빼버렸다
   원래  없었던 것 처럼

   이 시는 높은 톤으로 불황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쇼윈도우의 마네킹이 걸치고 있는 옷으로 대표되는 물건을 행인 1,2,3,4,5를 통하여 선뜻 살 수 없는 현실을 말하고 있다. 마네킹은 그 상점 주인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한데 결국 "백기를 들었다"라고 함으로써 불황의 심각성을 암시한다. "궁리 끝에/차라리 남은 한쪽 팔도 빼버렸다"라는 표현속에 감춰진 의미, 즉 새 마네킹을 사는 대신 불황을 온 몸으로 부딪히고 있는 현실의 불가피성을 실감케 한다. 이런 시가 바로 현실이라는 토양에 뿌리를 두면서도 현실을 극복하려는 시인의 비전(Vision)을 제시하는 것이다.
   조금 긴 시 한 편을 더 보겠다.


   기념패에 들어가 / 이어산

   남몰래 기념패에 들어가 숨어 있기로 했다 기념패 만들어 준 위원회는 사라지고 위원회가 추진했던 상징물은 산봉우리 하나로 솟아 있다 달이 가고 해가 가고 풀꽃이 피었다가 사라지고 다시 피려고 반짝이는 계절에 상징물은 더 높이 더 멀리 역사로 들어가고 있다 위원들은 제 일 제 자리로 가 역사와는 반대로 목련이 거듭 피거나 천리향 다시 향기로운 날에는 더 멀리 더 아래 현실의 바닥으로 내려 앉고 있다.
  
   우리의 상징물에는 햇빛을 타고 천년이 와 쉬고 바람을 타고 파발마 소리 요란히 당도하는데 시민들은 모래알처럼 무명으로 무기명으로 상징물을 우러러 보면 그만이다 위원도 때로는 저 상징물 만들 때의 무용담을 골목 돌 때마다 메아리로 새겨놓고 싶지만 하늘은 높고 상징물은 나날이 푸르러 그저 아득하면 되리라 아득한 김치가 되어 뚜껑 닫힌 독에나 쟁여 있을 뿐이다

   남몰래 기념패에 들어가 숨어 있기로 했다 돌을 져 나르던 날의 이름 석자와 돌을 져 나르던 날의 의미를 개괄해 놓은 문맥 몇 이랑에서 수건 머리에 쓰고 풀이나 매는 기념패 속의 생애를 살아 보기로 했다 역사는 제 상징물 이름표 달고 강의 상류를 쳐 올라가기도 하고 강의 하류나 선사시대 고분군으로 널뛰기하고도 지금 더 멀리 살아서 피로 흐르고 있다 거기 국중 위란(危亂)도 뜨고 논개도 뜨고 선비도 뜨고 경의(敬義)도 뜬다

   오, 단색의 질펀 질펀이여 길가에는 개망초 꽃이 삼일 만세 대열로 질펀히 피어 있다 저렇게 일제히 난만히 어우러져 전신 무식으로.

   위 시는 나의 고향인 경남 진주의 문화복원운동 추진위원장을 맡아서 일제에 의해 허물어 졌던 진주의 상징물인 망진산 봉수대를 재건하고 새로운 진주8경을 제정 공표 하는 등의 일을 마무리한지 7년 후인 2003년 격월간 시사사에 발표했던 졸시(拙詩)다. 당시 나는 가족이 운영하던 사업체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큰 어려움에 봉착하여서 힘들었을 때였기에 "기념패속에 들어가 숨어있기로 했다"라는 표현으로 더 이상 활동을 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한 시인 셈이다. 천년 역사를 간직한 진주라는 도시에 뿌리를 박고 그 역사에 돌 하나 더 갖다 얹은 이야기를 회상하고 개괄(槪括)하여 고백적 산문시 형태로 쓴 후 나는 10년 이상을 거의 절필하다시피 했다.
   이처럼 우리 생활 속에서 충격적이거나 가치 있는 부분을 선택하여 그 속에 담겨진 삶의 현실을 반영하고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우리의 정서를 반영하는데 까지 나아가야 비로소 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좀더 시가 좋아지려면 다음의 작법을 참고 하는 것도 시로서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 될 것이다.

  ●시를 시답게 하는 세 가지 방법

   1. 좋은 시는 좋은 사람이 쓸 수 있다.   
       시만 잘 썼다고 좋은 시가 아니다. 이것을 심리적 시인과 사회적 시인으로 나누어서 소개한적이 있는데 선천적으로 시적 감성이 풍부한 사람을 심리적 시인으로, 후천적으로 공부하여서 시를 쓰는 사람을 사회적 시인이라고 했었다. 어느 경우든 자기가 쓴 시에 못미치는 삶을 살면서 겉모습만 좋아보이는 것은 '짝퉁 시'라는 생각을 하기 바란다. 거짓 시는 자기가 썼어도 자기 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의 삶과 같이 가거나 그 시를 이끌어 가는 생활의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 쓴 시가 살아있는 생명시이기 때문이다.

   2. 진지한 말놀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시는 드높은 언어 관습이다. 언어를 함부로 내뱉는 사람을 무례한 사람이라고 한다. 저급한 말을 시에 자꾸 차용하면 저급한 시인으로 각인된다. 될 수 있으면 말글의 진폭이 넓고 다채롭게 하되 진지하고 품격높은 말글을 찾아내야 한다. 김언희 시인 등이 쓴 시를 '시궁창의 시'라는 혹평이 이어지는 것도 특색은 있으나 그 시의 엽기성과 저급한 내용을 말하는 것이다. 시를 쓰는 사람이 말글에 미숙하다면 치명적이다. 시는 끝까지 말글로 겨루어서 다른 익숙한 말글을 이기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오래 기억되는 시는 짧게 말하면서 품격있는 말놀이가 담겨 있어야 독자의 시선이 머물게 된다. 그런 시는 재미 있거나 품위 있고 삶의 창문에 멋진 커텐으로 사용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3. 고정관념으로 부터 매몰차게 떠나라
       시의 자질은 낯설게 하기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렸다고 이미 수 없이 말했다. 좋은 시란 적어도 손쉬운 고정관념으로부터 떠나는 일이다. 누구나 표현 할 수 있는 예사롭거나 일상적인 말,  흔한 소재, 통속적 사랑이나 그리움을 다룬 이야기, 결론이 뻔하거나 내용이 드러난 시는 실패한다. 즉 한 번에 그 뜻이 잡히지 않게하고 자기가 쓴 시를 독자가 읽어내지 못할까봐서 설명하려고 하지 말라. 독자에게 시의 여운을 이어가도록 여백을 두라. 유명 시들을 보면 다 말하지 않고 반만 말하는 간결성을 어김없이 보여준다. 친절한 설명은 시를 발가 벗겨 놓고 죽이는 것이다. 옷을 벗기는 것이 아니라 단아하되 단출하고 화려하지 않되 품위있는 옷을 입혀서 또다른 의미가 감춰진 맛이 있어야 좋은 시가 되는 것이다. 고정 관념에서 과감히 떠나지 못하면 십리도 갈 수 없고 발병만 난다.

   이어산, <생명의 시 운동> 열여덟 번 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