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제54강 시와 사랑과 액션(Action)

귀촌일기 박뫼사랑 2017. 12. 25. 11:31

<토요 시창작 강좌> 제54강

   ■ 시와 사랑과 액션(Action)

   모든 사람은 크든 작든 스스로 빛나는 하나의 '별'이라는 시각이 <생명시 운동> 의 기본 자세이다. 모든 시인이 일류 시를 쓸 수 없고 모든 시가 명작이 될 수도 없다. 시를 잘 쓴다거나 못 쓴다는 평가도 사실은 매우 주관적이다. 수준 높은 작품이라는 것도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유치한 수준의 글이라도 어느 사람에겐 큰 감동을 줄 수도 있다. 결국 시는 읽어내는 독자에 의해서 평가를 받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시나 좋은 시인은 좋은 독자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래서 생명시 운동은 시를 읽어내는 능력을 기르는 운동이요 시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운동이며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별이 되는 운동이다.
   시를 잘 쓴다면 좋겠지만 시가 좀 서툴어도 실망할 일이 아니다. 시 잘 쓰지 못한다고 잡혀갈 일은 없다. 그런데 시를 잘 쓴다고 소문난 시인들 중에는 인격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을 가끔 보게 된다. 시가 좋아서 전국적으로 꽤 알려진 유명한 시인인데 이런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녔다. "소주 다섯 병도 못 마시는 사람은 시를 쓰지 말라. 나는 그런 사람과는 말도 섞지 않는다" 나는 농담인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그는 술을 잘 못 마시는 시인은 시인 취급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는 그의 정치적 성향도 한 쪽으로 매우 치우쳐 있다. 그가 가르치고 있는 대학의 문창과 학생들이 걱정이 되었다. 이 예는 부끄러워서 드러낼 수도 없는 시인들의 자질 중 그래도 이해할 만한 부분도 있는 것이지만 성격적으로 "저건 아닌데"라고 생각되는 사람들도 많다.
   지금은 시만 잘 쓰면 모든 것이 용납되는 시대가 아니다. 공부만 잘하면 인성이 어떻든 용납 된다면 머리 좋은 싸이코패스나 제2의 히틀러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듯이, 자기 딸을 죽여서 자기집 방에 미이라가 되도록 1년 가까이 방치해 놓고 교회에서는 신실한양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라고 기도와 설교를 하고 신학대학에서 목회자를 길러냈던 그 사람은 목회자의 탈을 쓴 엉터리이듯 시인이라는 이름은 가졌어도 사람답지 않다면 그의 시가 아무리 좋아도 그 시는 쓰레기일 뿐이다. 후배 여자 시인을 성폭행 후 윤간을 하도록 하는 등 많은 물의를 일으키고도 "폭력도 권력이다"라고 부르짖던 박모 시인이 지병으로 죽은지 1년이 넘었다. 그 시인이 남긴 해체시의 대가라는 명성 때문에 그를 기리고 못잊어 하는 유명 시인이 신문에 그를 추모하는 글을 발표한 것을 보곤 "시단이 시의 작품성이라는 신기루를 따라 가다가 마침내 망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이라는 말은 세상 모든 것의 위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의 극존칭인데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정말 존경받는 어른 시인이 드물다는 사실이 가슴을 칠만큼 안타까운 일인 것이다. 이것은 자나깨나 좋은 시를 쓰는 것이 최고의 미덕인양 시 기술자, 시 노동자를 감싸고 돌았던 나같은 사람의 책임도 크고 시단의 지도자들도 큰 책임감을 느껴야할 일인 것이다.
   이 밴드를 운영하는 것은 사람다운 시인, 사람다운 독자가 먼저 되자는 참회의 운동이다. 누군가 나서서 이런 운동을 해 주기를 바랬지만 아직 인격이나 삶의 진정성이 여물어지지 못한 나같은 사람이 생명시 운동의 중심에 섰다는 것이 부끄럽고 미안한 일이지만 뜻을 모아주는 시인과 회원들이 있어서 사람다운 시인, 시인다운 시인, 독자다운 독자의 길을 함께 배우면서 가보자는 용기를 내는 것이다.

   생명시의 개념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시를 쓰되 다만 시가 되도록 진지하게 쓰고 그 시에 값하는 삶의 자세를 갖자는 것이다. 그래서 시를 읽거나 쓸 때 다음의 방법을 참고하기 바란다.

   첫째,
   난생처음 보는 것처럼 사물을 진지하게 보는 자세로 시를 읽거나 써야 한다. 호기심으로 새롭게 보려는 눈을 가져야 시 속으로 들어 갈 수 있다. 그래야 시 속에 감춰지거나 감추고자 하는 것이 보인다.

   둘째,
   우리의 상식과 통념을 뒤집어서 거꾸로 보아야 된다. 고정관념을 바꿔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서 '꽃은 아름답다'거나 '어두운 밤' '똥은 더럽다'등의 고정관념적인 것은 시어로는 죽은 것이다. 미추(美醜)와 선악(善惡), 몸과 정신을 뒤바꿔 생각할 수 있어야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셋째,
   연애하듯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윽하게 응시해야 한다. 그래야 생명 없는 것에서도 숨소리가 들리고 나에게 나지막한 말을 걸어 올 것이다. 그때 우리는 받아 적으면 된다.

   넷째,
   최고의 시란 '절대적인 다름'을 '나와 하나되게 하는 체화작업(體化作業)인 것이다. 이름을 감춰놓고 보아도 그 사람의 향취가 있는 시, 그 사람의 삶에 값하는 진솔함에 감동되는 그런 시가 최고의 생명시다.

   다섯째,
   의미의 순수한 계열을 교란하고 횡단하면서 새롭게 생성해 내는 사건에 눈길을 주어야 한다.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으로 치환해 내는 시안(詩眼)이 필요하다. 


   혀 / 김기택

   수박을 우적우적 씹어 삼키고 난
   그의 입에서
   대여섯 개의 수박씨가 차례로
   튀어나왔다
   벙어리장갑처럼 뭉툭한 혀는
   이빨 사이에서 힘차게 으깨지는 수박
   속에서
   정확하게 씨를 골라내고 있었던 것이다
   수박을 먹으며 그는 하던 말을 계속 
   이었다
   그가 수박씨 다음으로 내뱉는 말들이
   수박 파편들을 피해가며 정확한 발음을
   내도록
   혀는 쉴 새 없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 작은 집으로 갈비와 맥주와 냉면이
   들어가고
   수박까지 남김없이 다 들어간 것은
   입구멍 안에 어둡게 숨어 있는 혀 탓일
   것이다
   먹을 만큼 먹어 더 먹을 마음이 없어진
   혀는
   수고했다고 등 두드려주는 두툼한
   손바닥처럼
   이와 입술을 오랫동안 정성껏
   핥아주었다
   실컷 먹고 마시고 떠들고 난 그는
   개고기 끝내주는 집이 있는데 다음엔
   거기 가자고
   차만 안 막히면 한 시간에 충분히 갈 수
   있다고
   중복 점심에는 다른 약속 하지 말라고
   혀로 입맛을 다시며 내게 다짐을
   받아두었다

   위 시는 초고속 카메라로 찍은 영상 같이 대상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흔히 마주치는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하면서 충격적인 진실을 목도하도록 만든 시다. 이런 시가 살아있는 시다운 시다.
   하나만 더 보겠다.

   그렇게 속삭이다가 / 이성복

   저 빗물 따라 흘러가봤으면,
   빗방울에 젖은 작은 벚꽃 잎이
   그렇게 속삭이다가, 시멘트 보도
   블록에 엉겨 붙고 말았다 시멘트
   보도블록에 연한 생채기가 났다
   그렇게 작은 벚꽃 잎 때문에 시멘트
   보도블록이 아플 줄 알게 되었다
   저 빗물 따라 흘러가봤으면,
   비 그치고 햇빛 날 때까지 작은
   벚꽃 잎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고운 상처를 알게 된 보도블록에서
   낮은 신음 소리 새어나올 때까지

   위의 시는 사물을 사랑의 마음으로,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작은 벚꽃 잎 때문에" 생긴 '시멘트 보도블록'의 '연한 생채기'를 발견하게 되었고 특히 양행(兩行)걸침의 기법으로 인간의 관점이 보도블록의 관점, 대상에 생명성을 불어넣어 그 소리를 듣고 있음을 장치적으로 보여주는 시다. 생명 없는 것, 미물도 자세히 보면 살아있는 이야기가 보이고 자세히 듣고자 하면 들리는 것이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부여되는 특권이다.

   오늘의 강좌에는 그동안 강조해 왔던 내용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밴드의 존재 이유이므로 틈만 나면 강조를 할 수 밖에 없음을 이해 하시기 바란다. 시란 사랑이고 그 사랑의 실천(Action)이기 때문이다.

   - 생명시 운동7, 이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