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제51강 살아있는 시와 죽은 시

귀촌일기 박뫼사랑 2017. 12. 25. 11:25
<토요 시창작 강좌>제51강

   ■ 살아있는 시와 죽은 시

   이것이 날개다 / 문인수

   뇌성마비 중증 지체 언어장애인  
   마흔두 살 라정식씨가 죽었다
   자원봉사자 비장애인 그녀가 병원
   영안실로 달려갔다
조문객이라곤 휠체어를 타고 온 망자의
   남녀친구들 여남은 명뿐이다
   이들의 평균 수명은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 양 턱없이 짧다
   마침 같은 처지들끼리 감사의 기도를
   끝내고
   점심식사중이다
   떠먹여주는 사람 없으니 밥알이며 반찬
   국물이며 건더기가 온데 흩어지고
   쏟아져 아수라장 난장판이다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정은씨가 그녀를 보고 한껏 반기며
   물었다
   #@%, 0%ᆞ$&*%ㅒ#@!#*?(선생님,
   저 죽을 때도 와주실 거죠?)
   그녀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왈칵,
   울음보를 터뜨렸다
   $#ᆞ&@\ᆞ%,*&#......(정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

   입관돼 누운 정식씨는 뭐랄까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이제 비로소 빠져나왔다
   다 왔다 싶은 모양이다 이 고요한 얼굴
   일그러뜨리며 발버둥치며 가까스로
   지금 막 펼친 안심 창공이다.

   시는 결국 세속에서 태어나고 세속에서 꽃이 피든지 소멸하든지 한다. 세속을 벗어난 시는 시로서의 생명을 유지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세속적인 시가 좋은 시인가? 아니다. 세속에 뿌리를 두되 내가 가보지 않은 길, 자기 안에 들어온 이질적이고 불편한 것, 낯선 것을 환대 함으로써만 시가 시다와 지고 좋은 시가 되는 것이다. 저 이상한 기호들을 보라. 뇌성마비 장애인의 이해되지 않는 어눌한 발음을 기록한 저 괄호안의 설명은 자원봉사자인 그녀가 장애인인 그들에게 쏟아온 눈물의 해석이다. 그녀가 없었으면 저 말은 번역 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이것을 말글로 승화시킨 문인수 시인이 있기에 우리는 하늘을 날고 싶은 천사들의 날개를 발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좋은 시를 쓴다는 것은 세상의 작고 보잘것 없어 보이는 것들에 대한 깊은 사색이고 방언을 해석하는 일이다. 시인은 해석한 그것들을 사람들에게 최대한 축약하여 말하되 긴 의미를 담아냄으로써 위안을 주는 사람이다. 시인이 갖게되는 사색창고의 크기는 검색을 통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체험과 책이나 시집을 읽은 양에 비례 하는 것이고 그것을 내것으로 체화 시켰을 때 나의 향기를 담을 수 있다. 검색을 통해 얻은 지식은 힘이 없고 색깔이 없다. 따라서 가장 나쁜 시는 체화되지 않은 거짓 위안이고 자기 얼굴에 온갖 허풍을 칠하는 일이며 자기를 속이는 글이다.

   시란 힘없고 보잘것 없는 작은 주체들의 기록이다. 시는 거대담론이 아니며 큰 주체들의 언어가 아니라 차라리 탄식과 고백과 웅얼거림과 노래의 언어다. 좋은 시는 가능하지 않은 대상을 만나는 일이고 할 수 없는 말들을 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좋은 시는 확신하지 않고 의심하며 가르치지 않고 질문한다. 격정적 감정 표현은 좋은 시가 아니다. 좋은 시는 담담한 어조속에 격정적 감정을 숨겨놓는 일이다. 낯익은 것들이 낯선 것들로 교체되는 것이고 사연을 개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연의 일부가 되는 일이다.
시를 잘 써야겠다고 마음 먹으면 시는 달아난다. 땀내가 나는 자기만의 말들을 꾸밈없이 순결한 이야기 구조로 쓸 수 있어야 한다. 이말은 화려한 언어와 타협하지 않는 비타협의 결과물이어야 시가 자리를 잡는다는 말이다. 사물의 뒤에 감춰진 언어가 제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고쳐 말하고 고쳐 말한 것을 또다시 고쳐 말하려는 노력이다. 그리고 끝나지 않은 낯선 언어의 길을 찾아가려는 자세가 시인의 길을 제대로 가려는 자세인 것이다. 그리하여 생명의 시를 쓴다는 일은 생명 없던 것, 숨어있던 것에 생명을 불어넣어 그것이 스스로 말하게 하려는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  이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