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창작 강좌>제49강
■ 생명시 운동, 독자되기 운동
우리나라에서 제일 인기 있는 시인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안도현? 김용택? 이해인? 그런데 통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김소월을 꼽거나 윤동주, 한용운 시인 등을 꼽고 서정주, 박목월 시인 쯤 들고나면 시에 대해서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나 전문으로 시 공부를 하는 문창과 학생 등을 제외하고는 시인들에 대해서 잘 모른다. 이 말은 그만큼 시를 읽지 않는다는 말이다. 심지어는 시를 쓰는 사람조차 남의 시집을 직접 구매하여 읽는 경우가 흔치 않다는 말이 정설처럼 되어있을 정도이니 슬픈 현실이다. 모든 문학장르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펴내는 것이 바로 시집이지만 특정한 몇몇의 경우를 제외하고 가장 안팔리는 것 또한 시집이다. 국내 서점을 통틀어서 한 사람의 시집이 300~500권 정도만 팔려도 베스트셀러라고 하니 기가찰 노릇이다. 우리나라에는 어중이 떠중이 시인을 합치면 시인이 5만여 명은 될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 많은 시인들이 자기 돈을 지불하고는 시집을 잘 사보지 않는데 일반인을 탓해서 무엇하랴. 일이 이렇게 된데에는 요즘 시가 어렵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시를 감상하고 즐기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에서 시를 제대로 배워야 하는데 대부분의 선생들은 시험 문제를 풀기위한 방법이나 요령을 터득하도록 가르치는데 촛점을 맞춘다. 심지어 입시학원 강사 중에는 시의 내용을 이해하고 즐기는 것은 문제풀이에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시는 수학공식 풀듯 풀이를 잘 하여서 시험 점수를 잘 받는 것이 최고의 가치이고 실속인양 가르친다. 여기에다 한 술 더 떠서 시험 문제를 내는 사람들은 변별력을 이유로 그 시를 쓴 사람조차 풀기 어려운 문제를 내어 놓고는 학생들에게 혼란을 부추긴다. 이것은 우리의 교육이 시를 어려운 것으로 각인 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점수를 한 점이라도 더 따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자동차를 분해하고 조립하듯 어렵게 시를 공부하게 되는데 진학을 하거나 사회인이 되어서는 그 지긋지긋하던 시를 읽고 싶기나 하겠는가?
시인과 독자 / 오탁번
방울토마토를 따고 있는데
챙 넓은 나비날개 모자를 쓴
예쁜 아가씨가 들어온다
지난봄 새로 시집을 낸 나는
지레짐작 흐뭇해진다
내 시의 독자이니 이렇게 말할게다
- 시집에 싸인 좀 해주세요
방울토마토를 함께 먹으면서
시적 상상력이 어떠니 자연친화가 어떠니
희떱게 떠들면서
파안이나 하려는 나와는 영 다르게
- 화장실 쓸 수 있나요?
나는 숙직실 바깥 화장실을 가리킨다
아가씨가 볼일을 보는 동안
문득 한 생각이 떠오른다
시집 낼 때 '시인의 말'을 쓰듯
시적 화자의 탈은 벗어버리자
시인도 능동적이어야 한다
독자의 반응을 숨어서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셀프 마케팅을 해야 한다
이런 생각이 든 나는
화장실에서 나온 아가씨에게
일단 방울토마토를 몇 개 주면서
수작을 건다
- 나들이 왔나보네?
아가씨는 고개를 까딱하더니
밖으로 그냥 나가버린다
아무렴 공치는 날도 있는 법!
한참뒤 화장실에 가보니
변기 속에서 샤워하는 생리대
마릴린 먼로의 입술보다 더 붉은,
제기랄!
위 시는 시인의 착각을 비꼬기도 한 시이다. 내가 몇 번 강조 했지만 시는 읽어 주는 독자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읽어주는 이가 없는 시는 시인 자신만 보는 일기처럼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나름대로 꽤 유명하다는 오탁번 시인인지라 예쁜 그 아가씨는 자신을 당연히 알아봐 줄 독자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문학소녀도 아니요 독자도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이고 개념이 없어 보이는 젊은 세대임을 풍자하면서도 자기 잘났다고 떠드는 시인들의 착각을 은근히 꼬집고 있다. 나는 요즘 이런 불길한 생각이 든다. 진정한 독자의 수 보다 오히려 시인의 수가 더 많은 시대에 우리가 사는 것은 아닐까? 진정한 독자 한 명은 열 명의 시인보다 귀하다는데 그런 소리를 듣게 된데에는 시를 쓴다는 사람들이 남의 시를 읽지도 않고 남의 시집 한 권 자기 돈으로 사서 볼 마음의 여유도 없는,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독선이 만들어 낸 사건은 아닐까?
보통 가까운 시인이 새로운 시집을 냈다고 하면 그 시집을 한 권 사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아니라 친필 서명을 한 시집 한 권 쯤 보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그러다가 시집을 받지 못하면 "시집도 한 권 보내주지 않는다"며 그 시인에게 섭섭한 감정을 가지기도 한다. 시를 쓴다는 사람들조차 자기와 가까운 사람의 시집을 공짜로 얻기 바랄 뿐 그 시집 한 권 사주지 않는데 일반인 누가 시집을 사서 보겠는가 말이다. 나는 나와 연이 있는 시인이나 관심있는 시인이 새로운 시집을 내면 서점에서 그 시집을 사려고 노력한다. 혹 서명을 하여 시집을 보내주면 다섯 권 정도는 직간접으로 돈을 주고 사서 주변에 선물한다. 가까운 사람의 혼사나 길흉사에도 최소한 5만 원 정도의 부조는 하지 않는가? 시인이 시집을 낸다는 것은 일생일대의 축하받을 사건일 수도 있는 일인데 가깝다는 사람들이 더 공짜를 바라는 그 마음부터 고쳐먹지 않으면 우리의 시집이 서점에서 일반인에게 팔리기란 요원한 일일 것이다. 그냥 부조하는 것도 아니고 시집도 받고 축하의 뜻도 전하는 것인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만약 시인이나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시집 공짜로 받지 않고 사서 봐야겠다는 운동만 일어나도 시집은 다른 문학 장르 이상으로 팔릴 것이며 시가 국민들의 정서에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시를 쓰려는 사람들이여!
내 삶의 현실에서 나를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독자를 밖으로 내몰 것이 아니라 나부터 진정한 독자가 되자! 그리고 시를 어렵게 분석하지 말고 즐기자. 또한 전문가들의 전유물이 된 어려운 시 말고 우리를 따뜻하게 쓰다듬고 보듬는 어머니 약손 같은 시, 서정의 깊은 우물에서 퍼올린 심층수 같은 시집을 사서 보자. 시집 한 권에서 많은 것을 건지려는 생각을 버리고 마음이 따뜻해지고 감동되는 몇 소절의 시어만 건져도 그 시집은 우리에게 할 일 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를 읽자. 자꾸 보면 보이고 보여야 시를 쓸 수 있다. 당신의 시를 못봐서 숨 넘어 가는 사람은 없으므로 시가 보일 때 까지 시를 읽자. 독자도 되지 못한 사람이 시를 쓴다는 것은 거짓 시인이기 때문이다. - 이어산
■ 생명시 운동, 독자되기 운동
우리나라에서 제일 인기 있는 시인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안도현? 김용택? 이해인? 그런데 통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김소월을 꼽거나 윤동주, 한용운 시인 등을 꼽고 서정주, 박목월 시인 쯤 들고나면 시에 대해서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나 전문으로 시 공부를 하는 문창과 학생 등을 제외하고는 시인들에 대해서 잘 모른다. 이 말은 그만큼 시를 읽지 않는다는 말이다. 심지어는 시를 쓰는 사람조차 남의 시집을 직접 구매하여 읽는 경우가 흔치 않다는 말이 정설처럼 되어있을 정도이니 슬픈 현실이다. 모든 문학장르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펴내는 것이 바로 시집이지만 특정한 몇몇의 경우를 제외하고 가장 안팔리는 것 또한 시집이다. 국내 서점을 통틀어서 한 사람의 시집이 300~500권 정도만 팔려도 베스트셀러라고 하니 기가찰 노릇이다. 우리나라에는 어중이 떠중이 시인을 합치면 시인이 5만여 명은 될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 많은 시인들이 자기 돈을 지불하고는 시집을 잘 사보지 않는데 일반인을 탓해서 무엇하랴. 일이 이렇게 된데에는 요즘 시가 어렵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시를 감상하고 즐기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에서 시를 제대로 배워야 하는데 대부분의 선생들은 시험 문제를 풀기위한 방법이나 요령을 터득하도록 가르치는데 촛점을 맞춘다. 심지어 입시학원 강사 중에는 시의 내용을 이해하고 즐기는 것은 문제풀이에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시는 수학공식 풀듯 풀이를 잘 하여서 시험 점수를 잘 받는 것이 최고의 가치이고 실속인양 가르친다. 여기에다 한 술 더 떠서 시험 문제를 내는 사람들은 변별력을 이유로 그 시를 쓴 사람조차 풀기 어려운 문제를 내어 놓고는 학생들에게 혼란을 부추긴다. 이것은 우리의 교육이 시를 어려운 것으로 각인 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점수를 한 점이라도 더 따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자동차를 분해하고 조립하듯 어렵게 시를 공부하게 되는데 진학을 하거나 사회인이 되어서는 그 지긋지긋하던 시를 읽고 싶기나 하겠는가?
시인과 독자 / 오탁번
방울토마토를 따고 있는데
챙 넓은 나비날개 모자를 쓴
예쁜 아가씨가 들어온다
지난봄 새로 시집을 낸 나는
지레짐작 흐뭇해진다
내 시의 독자이니 이렇게 말할게다
- 시집에 싸인 좀 해주세요
방울토마토를 함께 먹으면서
시적 상상력이 어떠니 자연친화가 어떠니
희떱게 떠들면서
파안이나 하려는 나와는 영 다르게
- 화장실 쓸 수 있나요?
나는 숙직실 바깥 화장실을 가리킨다
아가씨가 볼일을 보는 동안
문득 한 생각이 떠오른다
시집 낼 때 '시인의 말'을 쓰듯
시적 화자의 탈은 벗어버리자
시인도 능동적이어야 한다
독자의 반응을 숨어서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셀프 마케팅을 해야 한다
이런 생각이 든 나는
화장실에서 나온 아가씨에게
일단 방울토마토를 몇 개 주면서
수작을 건다
- 나들이 왔나보네?
아가씨는 고개를 까딱하더니
밖으로 그냥 나가버린다
아무렴 공치는 날도 있는 법!
한참뒤 화장실에 가보니
변기 속에서 샤워하는 생리대
마릴린 먼로의 입술보다 더 붉은,
제기랄!
위 시는 시인의 착각을 비꼬기도 한 시이다. 내가 몇 번 강조 했지만 시는 읽어 주는 독자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읽어주는 이가 없는 시는 시인 자신만 보는 일기처럼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나름대로 꽤 유명하다는 오탁번 시인인지라 예쁜 그 아가씨는 자신을 당연히 알아봐 줄 독자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문학소녀도 아니요 독자도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이고 개념이 없어 보이는 젊은 세대임을 풍자하면서도 자기 잘났다고 떠드는 시인들의 착각을 은근히 꼬집고 있다. 나는 요즘 이런 불길한 생각이 든다. 진정한 독자의 수 보다 오히려 시인의 수가 더 많은 시대에 우리가 사는 것은 아닐까? 진정한 독자 한 명은 열 명의 시인보다 귀하다는데 그런 소리를 듣게 된데에는 시를 쓴다는 사람들이 남의 시를 읽지도 않고 남의 시집 한 권 자기 돈으로 사서 볼 마음의 여유도 없는,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독선이 만들어 낸 사건은 아닐까?
보통 가까운 시인이 새로운 시집을 냈다고 하면 그 시집을 한 권 사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아니라 친필 서명을 한 시집 한 권 쯤 보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그러다가 시집을 받지 못하면 "시집도 한 권 보내주지 않는다"며 그 시인에게 섭섭한 감정을 가지기도 한다. 시를 쓴다는 사람들조차 자기와 가까운 사람의 시집을 공짜로 얻기 바랄 뿐 그 시집 한 권 사주지 않는데 일반인 누가 시집을 사서 보겠는가 말이다. 나는 나와 연이 있는 시인이나 관심있는 시인이 새로운 시집을 내면 서점에서 그 시집을 사려고 노력한다. 혹 서명을 하여 시집을 보내주면 다섯 권 정도는 직간접으로 돈을 주고 사서 주변에 선물한다. 가까운 사람의 혼사나 길흉사에도 최소한 5만 원 정도의 부조는 하지 않는가? 시인이 시집을 낸다는 것은 일생일대의 축하받을 사건일 수도 있는 일인데 가깝다는 사람들이 더 공짜를 바라는 그 마음부터 고쳐먹지 않으면 우리의 시집이 서점에서 일반인에게 팔리기란 요원한 일일 것이다. 그냥 부조하는 것도 아니고 시집도 받고 축하의 뜻도 전하는 것인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만약 시인이나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시집 공짜로 받지 않고 사서 봐야겠다는 운동만 일어나도 시집은 다른 문학 장르 이상으로 팔릴 것이며 시가 국민들의 정서에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시를 쓰려는 사람들이여!
내 삶의 현실에서 나를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독자를 밖으로 내몰 것이 아니라 나부터 진정한 독자가 되자! 그리고 시를 어렵게 분석하지 말고 즐기자. 또한 전문가들의 전유물이 된 어려운 시 말고 우리를 따뜻하게 쓰다듬고 보듬는 어머니 약손 같은 시, 서정의 깊은 우물에서 퍼올린 심층수 같은 시집을 사서 보자. 시집 한 권에서 많은 것을 건지려는 생각을 버리고 마음이 따뜻해지고 감동되는 몇 소절의 시어만 건져도 그 시집은 우리에게 할 일 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를 읽자. 자꾸 보면 보이고 보여야 시를 쓸 수 있다. 당신의 시를 못봐서 숨 넘어 가는 사람은 없으므로 시가 보일 때 까지 시를 읽자. 독자도 되지 못한 사람이 시를 쓴다는 것은 거짓 시인이기 때문이다. - 이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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