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폴다 / 김영관
저녁 식사 후 몇 년째 아파트 놀이터로 나가 걷기 운동을 한다. 나와 같은 시간대에 걷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친분이 생겨 서로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은 공통의 취향 때문인지 금방 친하게 지낸다. 목줄에 메여 주인 곁을 걷는 반려견들끼리도 서로를 탐색하는가 싶은데 어느새 친밀감을 드러내며 꼬리를 흔든다.
뉴질랜드 체류 시절 친구 몇 사람들과 목장 견학을 갔었다, 목양견 한 마리가 특이한 몸놀림으로 수많은 양 떼를 주인이 의도하는 장소로 몰고 가는 것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 적이 있다.
시각 장애인을 돕는, 마약 단속을 하는, 사냥을 돕는, 썰매를 끄는 등의 여러 형태의 일로 우리 인간을 돕는 동물이 바로 개 아니던가.
대략 1만 5천 년에서 1만 2천 년 전쯤으로 추정되는 동굴 벽화에 인간과 함께 있는 개의 모습이 보인다는 글을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있다. 이들이 인간과 함께 한 시간은 이보다 훨씬 더 오래 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개는 참으로 영리한 동물이어서 주인집에서 제일 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금방 알아차리고 그에게만 가장 충성을 한단다. 나머지 식구는 좀 우습게 아는 건방을 떨기도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집 실권자가 출타 중이면 그다음 실권자에게, 그마저도 없으면 제일 무시했던 사람에게 마지못해 다가서는 참으로 영악한 동물이라고 한다.
돌보는 이가 없이 야생 상태로 버려진 후 6개월이 지나면 인간과 가까워질 수 없는 상태의 개가 되어 버린다고 한다. 하여튼 개는 죽을 때까지 배신을 모르고 주인을 모시는, 참으로 순종을 잘하는 동물이다. 개가 인간에게 보인 놀라운 행동에 관한 이야기들은 참으로 많고도 많다.
대학 4학년 때 누나 집에 함께 살았던 적이 있다. 누나는 진돗개 혈통이 약간 섞인 개 한 마리를 길렀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누나는 담양 사는 사람의 짐바리 자전거에 개를 실어 보냈다. 광주에서 수십 리 먼 담양까지의 비포장도로를 자전거 타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 그 개가 누나의 집으로 걸어 들어서는 것이다. 놀란 누나는 그 개를 껴안고 “내가 미쳤지, 어쩌다가 내가 너를 버릴 생각을 했단 말이냐? 다시는 너와 헤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라며 눈물 글썽이던 모습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단독 주택에 살게 된 나는, 개 혈통서까지 발급해 준다는 말에 직장 동료 몇 분들과 더불어 젖 뗀 지 얼마 안 된 세퍼트 수컷 한 마리를 집에 데려와 정성을 다해 길렀다. ‘폴다’라는 이름의 반려견과 산책하기 위해 자전거를 구입한 나는 매일 아침 그의 목에 줄을 달고 산책길을 나섰다. 습관이 되어서인지 산책할 시간이면 방 안에 누워 있는 나를 불러내려는 듯 분주하게 문밖을 서성이곤 했다.
폴다와 함께 지낼 수 없게 된 상황에 처한 나는 고향 아버님이 운영하는 공장 집에 데려다주고 와야만 했다. 상황이 바뀌면 다시 데려올 수도 있겠다는 나의 기대감과는 달리 벌써 긴 이별을 예감했던지 그는 나와 헤어지기가 싫은 듯 안절부절 못했다.
그 후 6개월쯤 지나 고향집에 갈 일이 있었다. 버스 정류소에서 내려 공장 집을 향해 걷는데, 150미터 이상의 거리인데도 나를 알아보며 그 녀석은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반가운 울음소리를 낸다.
그날의 잠깐 만남 이후, 주인 나타나기만을 애타게 기다렸을 폴다는 내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인내의 한계를 벗어난 탓인지 성질 사나운 개가 되어 술 취한 사람이 갑자기 자신에게 접근하자 그 사람을 물어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그 녀석을 시골집 과수원 지킴이로 보냈다는 게 폴다에 관한 마지막 소식이었다. 내가 그 녀석에게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이제 와 새삼스럽다.
요즈음엔 유기견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TV에 등장하곤 한다. 이유야 여러 가지 일터다. 그럴만한, 피치 못할, 남이 알지 못한 사연이야 있겠지만 가족으로 살아온 반려견을 버린다는 것은 정을 가진 인간으로서는 차마 못할 짓이다. 자신은 백 년 살기를 바라면서 구불십년(狗不十年)의 마지막을 지켜내지 못할 거라면 애초에 정을 줄 일이 아니다. 정은 붙였다 떼었다 하는 것이 아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같이 비비고 뒹굴며 살아볼 각오가 있어야 반려견과 함께 할 자격이 있다.
<김영관 약력>
▲‘문학춘추’, ‘한국수필’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광주문인협회, 전남문인협회 회원
▲‘가을 벤치에서’ 수필집 외 다수
▲ 조선대학교 영문과 명예교수, 셰익스피어 학회 회원
[광주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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