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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기술 / 엘리자베스 비숍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6. 3. 30. 06:13

한 가지 기술 / 엘리자베스 비숍

 

(1·2연 생략)
더 많이 잃고, 더 빨리 잃는 연습을 할 것.
장소들을, 이름들을, 여행하려고 마음먹었던 곳들을.
이것들을 잃었다고 재앙이 오지는 않는다.

나는 어머니의 시계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보라! 사랑했던
세 집 중 마지막 집, 아니 끝에서 두 번째 집도 사라졌다.
잃어버리는 기술을 익히기란 어렵지 않다.

나는 두 도시를 잃었다. 아름다운 도시들. 내가 가졌던
더 넓은 영토들, 두 개의 강과 하나의 대륙을.
그들이 그립지만, 그렇다고 재앙은 아니었다.

―심지어 당신을 잃는대도(농담하던 그 목소리, 내가
사랑한 그 몸짓을) 내 말은 거짓이 아니다. 분명히
잃어버리는 기술을 익히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당장은 (그냥 써!) 재앙처럼 보이겠지만.
- 엘리자베스 비숍(1911~1979)


살면서 필요한 한 가지 기술로 비숍은 “잃어버리는 기술”을 말한다. 시인은 “더 많이 잃고, 더 빨리 잃는 연습”을 독려하면서 그동안 잃어버린 존재들을 떠올린다. 어머니 시계, 두 도시, 두 개의 강과 하나의 대륙. 여기엔 비숍이 겪어온 상실의 역사가 압축돼 있다.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의었고, 다섯 살 때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보내진 후로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유년기에 겪은 상실감으로 그녀는 ‘집’과 ‘사랑’을 찾아 유랑했다. 세계여행 중에 건축가 ‘로타’를 만나 브라질에서 17년을 살았지만, 로타의 자살로 그 사랑은 끝이 났다. 이 시는 1975년 무렵 연인 ‘앨리스’와의 이별을 예감하며 쓴 듯하다. 화자는 “잃어버리는 기술을 익히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를 네 번이나 반복하며 스스로 다독이지만, 마지막 연에서 그것이 재앙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그냥 써!”)라는 문장은 화자의 내면적 갈등을 잘 보여준다. 아무리 연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이별과 상실의 경험이다. 그래서 우리는 “잃어버리는 기술”을 배울 수밖에 없다.

 [경향신문 나희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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