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라는 종교 / 임정옥
뜨거운 말은 바다로 간다
사람들이 저마다 숨기고 사는
그리운 말도 바다로 간다
파도가 바위를 둥글게 깎아
까맣게 빛나는 저 몽돌은
아직 고백하지 못한
파도의 말인지 모른다
그대가 하루, 아니 사흘쯤
차갑고 단단한 몽돌해변에 서서
노을 지는 바다와
달 뜨는 바다를 만난다면 (후략)
- 임정옥 '바다의 사원(寺院)' 부분
인간의 가장 오래된 종교는 바다가 아닐까. 바다 앞에서 마음을 고백하고 속엣말을 털어놓은 뒤 결국 바다를 등지며 귀가할 땐 왠지 모를 위안과 평온을 선물받기 때문이다. 그 말들이 쌓이고 쌓인 바다는 출렁거리며 응답한다. 그리고 우리 앞에 몽돌 몇 개를 내어놓는다. 둥글게 살라고, 보드랍게 살라고. 우리가 뱉은 뜨거운 말과 그리운 말들이 바다라는 사원으로 모여든다고 시인은 말한다. 바다 앞에 서기에 좋은 날씨다. 몽돌 몇 개를 손에 쥐고 조금만 걸어보자.
[매일경제신문 김유태 문화스포츠부 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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