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의 하루 / 마종기
있는 듯 다시 보면 없고
없는 줄 알고 지나치면
반짝이는 구슬이 되어 웃고 있네.
없는 듯 숨어서 사는
누구도 갈 수 없는 곳의
거대한 마지막 비밀.
내 젊은 날의 모습도
이슬 안에 보이고
내가 흘린 먼 길의 눈물까지
이슬이 아직 품어 안고 있네.
-마종기(1939~)
시인은 숨어 있는 듯한 이슬을 찾아낸다. 반짝거리는 이슬의 빛은 구슬 같고, 또 웃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슬은 사라지고 말 처지에 있다. 이슬이 어디로 사라지는지, 그 행선지가 어디인지를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시인은 사라지기 직전의 이슬이 “거대한 마지막 비밀”을 지니고 있다고 표현한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사라질 이슬처럼 시간과 사람의 일생도 어딘가를 향해 흘러가고 있으며, 우리는 이 이슬과 같은 영롱한 빛과 맑은 정신을 스스로 갖고자 희망한다는 점일 것이다. 시인은 젊은 날의 방황과 번민과 슬픔을 맑은 이슬 속에서 발견한다. 과거를 깨끗한 둘레로 감싸 안는다. 잠 못 이루었던 숱한 밤과 고단했던 삶에 대한 경의와 화해의 표현이라고 하겠다.
시인은 시 ‘이슬의 명예’에서 “이슬은 내 육신의 명예,/ 이른 어두움에 태어나서/ 아침이 다 피기 전에 떠난다”라며 “정성을 다해 사랑한다는 일은/ 얼마나 어렵고 무서운 결단인가”라고 노래했다. 이슬과도 같은 옥토에서 우리가 살 수 있다면. 이슬의 눈과 육체와 영혼을 지닐 수 있다면.
[조선일보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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