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 최지은
그해 전학 간 그 마을
조퇴한 오후
혼자 집에 있을 때면
뒷산에서 들려오던 개 돼지 닭 염소를 잡는 소리
그때 나는 사과를 씹으면서
식물은 망가질 때 가장 식물다운 소리를 냈다
또 한번 사과를 씹으면서
사람이 망가질 땐 어떤 소리를 낼까
시를 썼다
첫번째 고백은 새엄마가 책갈피 속에 숨겨둔 자목련 꽃잎을 조금씩 찢어버린 일
그걸 망가뜨리려고 책장 앞에서 놀다가 읽다가
찢고 덮고 다시 찢고 덮고
오래 하기 위해 조금씩만 했던 일
사과를 씹으면서
집은 더 조용해지고
이제 거의 투명해져서
다시 사과를 씹으면서
소리 없는 오후
내가 사라진 것 같은 오후
너무 조용해
무엇이든 다 들켜버릴 것만 같았다
시를 썼다
[최지은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 창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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