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의 끝에서 가을 초입으로 옮겨가는 시기, 미묘하게 달라지는 풍경을 알아챌 수 있나요? 나무들은 이때 매일 조금씩 달라집니다. 여름 한때 무성했던 나뭇잎을 언제라도 떨구어내려는 듯 수분을 덜어내고, 이파리에 색을 입히는 나무들의 부지런함! 마음은 여름의 끝에 두고 몸은 가을 나무 곁에 서 있으니, 그 시차에 잠시 멀미가 날 것 같습니다.
윤동주가 그리는 ‘소년’은 가을 나무 아래에서 마음의 테두리를 더듬어보고 있습니다. 시의 첫 문장,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는 표현이 서늘하게 다가옵니다. 가을이 “슬픈 가을”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파리가 땅으로 떨어질 때의 낙차, 잎 색을 바꾸는 나무의 뒤척임이 만져질 것 같습니다. 소년은 여름 나무가 가을 나무로 몸을 바꾸는 풍경 아래에서 하늘을 봅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소년의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들고, 두 손으로 뺨을 쓸어보니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는군요. 소년은 한그루 가을 나무가 됩니다. 나무에 단풍 들듯 소년의 몸과 마음도 푸르게 물이 듭니다. 아름답지 않나요?
소년의 파란 손바닥에는 강이 흐르고, 그 속에 소년이 그리워하는 순이의 얼굴이 떠 있습니다. 윤동주는 소년이 그리워하는 순이의 얼굴을 “사랑처럼 슬픈 얼굴”이라 부릅니다. 시인에게 아름다운 것과 슬픈 것은 동의어로 보입니다. 슬픈 가을, 슬픈 얼굴은 아름다운 가을, 아름다운 얼굴이 되겠지요. 눈을 감아도 감은 눈 속에서 흘러가는 얼굴이 있을까요, 이 가을에.
[동아일보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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