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소년이 있었다 / 김근
새가 되어 날아갈 것 같아요
소년이 내게 말했다 고요히
나는 소년의 솜털 부숭한
귓불을 쓰다듬었다 이따금
소년의 귀에선 내가 쓰다 버린
문장들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 문장들을 기워
새를 만들었다 그보다는
내 가슴을 오려
새를 만들었으면 좋았을걸
어두운 벤치 위에 소년은
내 무릎을 베고 누웠다
가쁜 숨 몰아쉬며
눈동자를 흐리며 그만
눅눅한 공기 속으로 소년은
깃을 치며 날아갔다
나는 그저 돌아갈밖에
얇고 여린 소년의 껍질이
어깨 위에 가볍게 걸쳐진 채
자꾸 나부끼던 밤이었다
김근(1973~)
한 소년이 있었다. 어둡고 어두운 밤에 “새가 되어 날아갈 것 같아요”라고 시인에게 말하던 소년이 있었다. 시인이 소년의 “솜털 부숭한 귓불”을 만지자, “소년의 귀”에서 모음에 가까운 “문장들이 흘러”나온다. 시인은 그 문장들을 하나둘 줍다가 그것이 자신의 찢어진 비명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찢어진 “문장들을 기워” 새를 만들지만, 날지 못한다. 소년은 시인의 자아이고, 도플갱어이며, 그림자이다.
새를 그리워하다가 소년은 점차 새가 되어 갔다. 새가 된 소년을 보며 시인도 제 가슴속 새를 꺼내 날려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새는 시인의 말을 품고 멀리 날아갔다.
오늘 우리 안의 소년과 소녀를 꺼내놓고 새를 오려 허공에 날린다. 우리는 새가 될 수 있다. 어둠에 지지 않으려고 어둠으로 날개를 만들어 힘껏 날아간다. 밤의 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응시하며.
[경향신문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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