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말 잊기 / 김성규
물고기가 처음 수면 위로 튀어오른 여름
여름 옥수수밭으로 쏟아지는 빗방울
빗방울을 맞으며 김을 매는 어머니
어머니를 태우고 밤길을 달리는 버스
버스에서 졸고 있는 어린 손잡이
손잡이에 매달려 간신히 흔들리는 누나의 노래
노래가 소용돌이치며 흘러다니는 개울가
개울가에서 혼자 물고기를 파묻는 소년
소년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버지
아버지가 버스에 태워 보낸 도시의 가을
가을마다 고층빌딩이 쏟아내는 매연
매연 속에서 점점 엉켜가는 골목
골목에서 여자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손가락
손가락이 밤마다 기다리는 볼펜
볼펜이 풀지 못한 가족들의 숙제
숙제를 미루고 달아나는 하늘
하늘 쪽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민 마을
마을에서 가장 배고픈 유리창
유리창에서 병 조각처럼 깨지는 불빛
불빛 속에서 물고기처럼 우는 사내
사내가 부숴버린 어항이 조각조각 널린 방바닥
방바닥에서 퍼덕거리다 죽어가는 물고기
김성규(1977~)
이 시는 여름, 빗방울, 어머니 등으로 시작해 방바닥, 물고기까지 단어들을 이어가는 끝말잇기 형식을 띠고 있다. 이 단어들 사이에는 어떤 친연성이 있어서 시인의 기억 속에 오래 응축되었다가 풀려나왔을까. 시인의 무의식 속에서 계속 솟구치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들.
“물고기가 처음 수면 위로 튀어오른” 여름, “개울가에서 혼자 물고기를 파묻던 소년”이 있었다. “풀지 못한 가족들의 숙제”를 해야만 했던 소년은 “아버지가 버스에 태워 보낸 도시의 가을”, 매연과 소음으로 뒤엉킨 골목에서 시인이 되었다. 소년이 미리 보아버린 것은, “죽어가는 물고기”였을까. 그래서 “끝말 잊기”를 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인은 끝을 붙들고 있지만, 그것은 다시 시작하는 나비의 날개와 같은 것. 끝과 시작, 시작과 끝이 계속 반복되는 생. 생의 끝없는 바다가 흘러가고 물비늘 같은 눈동자들이 반짝인다.
[경향신문 이설야 시인]
'글쓰기 공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빛 헤엄 / 정다연 (0) | 2025.08.18 |
|---|---|
| 쑥 / 강성남 (0) | 2025.08.18 |
| 모국어 (0) | 2025.08.18 |
| 한밤의 트램펄린 / 남길순 (0) | 2025.08.12 |
| 얼얼해진 뺨 / 문충성 (0) | 2025.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