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쑥 / 강성남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5. 8. 18. 10:28

쑥 / 강성남

 

참 쑥스럽게
당신은 맨발로 달려오고 나는 이를 막지 못한다
밀폐된 겨울 다 쏟아버리고 피멍 든 제 속을 들여다본다
우주의 문이 열리고 얼떨결에 꿈틀거리는 정지 화면
칙칙했던 측백나무에도 색이 들어오고 있다
깊은 바닥을 일으키는 눈빛처럼 해토된 땅에 솟는 쑥
비밀처럼 묻혀 있던 시간이 뚫고 나오듯
쑥쑥 자라는 쑥을 바라보며
욕됨을 무릅쓴 나는 아직 말 못할 반성이 있는지 살핀다.
(시집 ‘담양 가세 담양 사세’, 시와 사람, 2025)

[시의 눈]
발길에 채이는 쑥을 보며 거추장스런 돌멩이와 다름없는 자연물이라 기피했던 적은 없는가. 쑥과의 악연에서 일어난 경험이다. 피멍든 겨울의 한기를 이기고 다시 들길을 파랗게 채워가는 쑥의 행진을 보면서 그의 질긴 생명력에 감탄해본 적은 없었던가. 쑥과의 좋은 인연이라 할 것이다. 봄날 여린 쑥은 봄나물, 봄 쑥국으로 그리고 전으로, 떡으로, 변주를 일으키며 사랑과 관심을 받는다. 결코 그가 흔해 빠진 잉여 다년생 식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다. 쌉쌀한 맛과 은은한 향이 녹색의 숲에서 배어 나온다는 것은 투박하고 소박한 풀이 가슴에 고이는 정을 두루 지나는 사람을 향해 온기를 묻혀 뿜어준다는 의미다. 쑥은 늘 자신의 줏대를 고수한다. 그의 권위는 나물, 국물 맛 뿐만 아니라 다양한 섭양의 쓰임새로 해 확대재생산 된다. 해열, 지열, 면역력 강화, 노화방지 등 처방 기능은 괄목할 만하다. 소화촉진, 혈관 기능, 뇌 기능 개선까지. 쑥의 행진을 반기는 이유일 것이다. 쑥이 성장해 활성화되면 우주의 문이 열린다. 비밀처럼 묻힌 시간이 뚫고 나오는 쑥의 시간이다. 속도를 여기에 맞추고 싶다. 실존적 자각의 쑥은 참회와 반성의 기제를 부여한다. 쑥에게 스스로를 비추어 보라. 말 못할 반성이 남아 있는지.

 <광주매일신문 윤삼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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