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한밤의 트램펄린 / 남길순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5. 8. 12. 10:24

한밤의 트램펄린 / 남길순

 

튀어오르는 자의 기쁨을 알 것 같다

뛰어내리는 자의 고뇌를
알 것도 같다

트램펄린을 뛰는 사람들
트램펄린을 뛰는 사람들

종아리를 걷은 맨발들이 보이고
총총 사라진 뒤

달빛이 해파리처럼 공중을 떠돈다

아무도 없는 공터에
트램펄린이 놓여 있고

속이 환히 비치는 슈퍼문이 떠 있다.
(시집 ‘한밤의 트램펄린’, 창비, 2020)

[시의 눈]
현대사회 인간상, 그 모습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그건 트램펄린을 뛰는 사람이 맞다. 아무도 없는 공터에서 뛰어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는 지극히 고독한 작업을 수행 중인 자들. 그들이 현대인의 또 하나의 초상이다. 어쩌면 시지프스의 바위 굴리기와 흡사한 트램플린 뜀뛰기, 그것은 시인의 웅숭깊은 사유와 실존적 대응이 있었음을 말한다. 타자와 자아의 부단한 교감 속에서 삶의 속살을 벗겨 보이는 언어의 벼린 칼끝이 보인다. 뛰고 뛰어봐야 제자리인 것을 알면서도 현대인은 욕망의 뛰기를 멈추지 않는다. 비상과 추락의 거듭된 행위를 통해 현대인의 삶의 모순을 어렴풋이 인식한다. 무참히 희망은 찢기고 뜯겨나가며 소멸하리란 것을. 헤밍웨이는 ‘인간은 파멸당 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 않는다’는 존재론적 존엄성을 ‘노인과 바다’에서 설파했다. 자아를 재건하고 고통에 대항하는 존재론적 대응을 뛰는 행위가 암시한다. 홀로 뛰고, 가라앉고, 비상하고, 추락하는 필사적 행위는 적어도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중 먹고사는 일의 노동단계는 벗어나 있다. 인간의 시간에 영속성을 부여하는 작업단계이거나 인간의 초월적 행위단계쯤이다. 살아있음의 확인을 통해 높은 차원으로 자아를 이끌어가려는 달빛 아래 몸짓이 결연하다.

<광주매일신문 윤삼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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