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사인용 식탁 / 조온윤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5. 8. 12. 10:17
사인용 식탁 / 조온윤

 

여느 날처럼 침묵을 두르고
밥을 먹으며 생각했다

외로움은 일인분의 식사가 아니다
사인용 식탁의 빈자리들이다

그리움은 인간을 본뜬 석고를
보며 그린 소묘를
또다시 베끼는 일이다

그걸 베끼고 또 베끼다보면
언젠가는
추상적인 동그라미 몇 개만 남게 될 것이다

식기를 치우면
책상이 되기도 하는
식탁 앞에 앉아
닫힌 창문을 보며 창밖을 그렸다

그릇을 씻고 덜 마른 손에
동그라미가 번져서
무언지 알아볼 수 없었다

조온윤(1993~)



우리는 매일 식탁에 둘러앉아 가족과 밥을 먹는다. 어떤 날은 왁자하게 떠들며 밥을 먹고, 또 어떤 날은 “침묵을 두르고” 앉아 밥을 먹는다. 사인용 식탁은 둥근 식탁과 달리 빈자리가 더 크게 다가온다. 우리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도 가족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서로가 만든 모서리에 찔리기도 하고, 서로에게 투명인간이 되기도 하면서.

시인에게 외로움이란 “일인분의 식사”가 아니라 “사인용 식탁의 빈자리들”이다. 그리움은 “인간을 본뜬 석고를 보며 그린 소묘”를 “또다시 베끼는 일”이다. 그것은 영원히 채울 수 없는 허기를 베끼고 또 베끼는 일이다. 식탁은 많은 기억을 갖고 있다. 사각의 기억, 뭉개진 기억, 깨진 기억, 끓어 넘치는 기억, 뒤집힌 기억, 끝내 지울 수 없는 기억까지. 식탁은 언제나 친근하게 우리를 불러 자리에 앉게 하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는 식구도 있다. 함께 앉아 있지만, 우리는 서로를 잘 알아볼 수 없을 때도 있다.

 [경향신문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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