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무명지 / 이영광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5. 7. 14. 14:49

무명지 / 이영광

 

약손가락은 옛날에

탕약 젓던

손가락이라 해요

약 손가락

무명지는 무명지,

이름 없는 손가락

눈에 잘 안 띄는

그냥 넷째 손가락

 

나는 넷째요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는

우리 집 노인이 저도 모르게

열심열심 깨무는 치매의

넷째 손가락

많이 아프진 말아야지

자꾸 깨물리진 말아야지 하며

약처럼 약속처럼 남은 생은

당신과 나아보고 싶어요

 

오늘 밤 피가 지나가는 당신 무명지에

외반지를 끼우며

우리, 이름 없기를

피프티

오늘 밤 당신이 내 무명지에

끼우는 외반지

후생의 사랑 같은 사랑의 후생 같은

피프티

이름은 없기를

 [이영광 '살 것만 같던 마음' 창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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