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시리즈 / 최지은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5. 5. 20. 13:59

시리즈 / 최지은

 

너를 기다리러 왔어

말하자

 

한 사람이 사라졌다

 

걷다보니

그애 집 앞이었다

 

비 내리는 운동장

 

유리창에 달라붙은 빗방울

얼굴이 너무 많다

 

당번은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는데

누구를 찾는 것인지

안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미술 시간에는 세밀화 하나를 그렸다

 

귀가 다리에 달려 있다는 곤충

뒷장에는 선생님 몰래 검은 구멍을 그려 넣었다

선생님은 한장 한장 그림을 포개 모은다

 

닫힌 음악실 앞을 지나갈때면 익숙한 노래가 흐른다

따라 부르려 하면

그대로 멈추는

 

조용해지는 사위

 

졸고 있던 책상 위에서

눈을 떴을 때였다

 

쓰다 만 너의 일기장 뒤에

나의 일기 이어 쓰다가

 

가끔씩 너와 내 이름

바꿔 적기도 하다가

 [최지은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 창비 2021]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