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쩍새 우는 봄날에 / 박규리
나에게도 소원이 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낮게 드리운 초라한 집 뜰에
평생을 엎드려 담장이 될지언정
스스로 빛나 그대 품에 들지 않고
오직 무너져 흙으로 돌아갈
한 꿈밖엔 없는 돌이 되는겁니다
구르고 구르다 그대 발 밑을 뒹굴다
떠롤다 떠밀리다 그대 그림자에 묻힌들
제아무리 단단해도 금강석이 되지 않고
제 아무리 슬퍼도, 기렇지요
울지 않는 돌이 되는 겁니다
이내 몸, 이 폭폭한 마음
소리없이 스러지는 어느날 , 그렇게
부서져 고요히 가라앉으면
다시 소쩍새, 다시 소쩍새우는 봄날에
양지바른 숲길에 부풀어 오른
왜 따스한 흙 한줌 되지않겠습니까
지쳐 잠든 그대 품어안을
눈물겨운 무덤 흙 한줌, 왜 되지 않겠습니까
[박규리 '이 환장할 봄날에' 창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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