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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쩍새 우는 봄날에 / 박규리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5. 5. 19. 13:13

소쩍새 우는 봄날에 / 박규리

 

나에게도 소원이 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낮게 드리운 초라한 집 뜰에

평생을 엎드려 담장이 될지언정

스스로 빛나 그대 품에 들지 않고

오직 무너져 흙으로 돌아갈

한 꿈밖엔 없는 돌이 되는겁니다

 

구르고 구르다 그대 발 밑을 뒹굴다

떠롤다 떠밀리다 그대 그림자에 묻힌들

제아무리 단단해도 금강석이 되지 않고

제 아무리 슬퍼도, 기렇지요

울지 않는 돌이 되는 겁니다

 

이내 몸, 이 폭폭한 마음

소리없이 스러지는 어느날 , 그렇게

부서져 고요히 가라앉으면

다시 소쩍새, 다시 소쩍새우는 봄날에

 

양지바른 숲길에 부풀어 오른

왜 따스한 흙 한줌 되지않겠습니까

지쳐 잠든 그대 품어안을

눈물겨운 무덤 흙 한줌, 왜 되지 않겠습니까

 [박규리 '이 환장할 봄날에' 창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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