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한 갈등 / 장명선
선생이 ‘시서(詩書)’를 가르치고 학생더러 익히게 한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간에 우애롭게 지내라.
신하가 되면 충성을 다하고 친구의 허물을 지적하지 마라.
종일 단정히 앉아 수양하면 남에게 아둔하고 미쳤다는 비아냥을 사지 않는다.
선생은 학생이 부지런히 갈고닦아야 한다고 하는데,
학생은 선생님 잔소리가 심하시다고 말한다.
학부모 왈, 글 모르는 게 다 선생 탓이지.
(講詩書, 習功課. 爺娘行孝順, 兄弟行謙和. 爲臣要盡忠, 與朋友休言過. 養性終朝端然坐, 免敎人笑俺瘋魔. 先生道學生琢磨. 學生道先生絮聒. 館東道不識字由他.)
―‘보천악(普天樂)·선생을 조롱하다(조서석·嘲西席)’ 장명선(張鳴善·원대 말엽)
선생, 학생, 학부모 사이에 감춰진 갈등이 아슬아슬하다. 선생은 충효 정신부터 성실한 처신까지 유가의 덕목을 잘 실천하라 가르친다. 하나 선생의 열정에 비해 학생은 시큰둥하다. 갈데없는 잔소리라 여기고 귓등으로 흘렸나 보다. 결국엔 ‘글 모르는’ 학생이 되고 만다. 이 불협화음을 부모는 어떻게 바라볼까. 일언지하에 그걸 ‘선생 탓’이라 단정한다. 시제를 ‘선생을 조롱하다’라 붙였으니 자식을 원망하기보다 선생에게 불만을 늘어놓은 모양새다.
마지막 시구를 ‘글 모르는 게 다 걔 탓’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도리상 부모가 까닭 없이 선생을 매도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원문의 대명사 ‘他(다를 타)’가 그 사람(선생)인지 그 아이(자식)인지가 애매해서 생긴 문제다. 유학자로서 시인은 애먼 선생을 타박하는 사회 풍조를 풍자하려 이런 제목을 달지 않았을까. ‘보천악’은 원대의 운문인 산곡(散曲)의 곡조명.
[동아일보 이준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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