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오월 / 박준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5. 5. 16. 11:34

이 시가 품은 오월은 고요하고 청아하다. 일곱 연, 일곱 행이 전부인 이토록 ‘간결한 푸름’이라니 퍽 아름답다. 이 시에는 달리는 사람이 없다. 크게 웃거나 크게 우는 사람이 없다. 공중제비 하거나 월담하는 사람도 없다. 초목의 무성함이나 눈부신 날씨도 없다. 대신 “한낮에도 꿈을 헤매는 사람”이 있다. “다시 눈부터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오월의 사람, 그의 움직임은 ‘눈’에서 시작한다. 바라보는 일도 그에겐 움직임이 된다. 오월의 사람은 가만가만 망설이는 사람일 것이다. 넘어진 뒤 옷에 묻은 꽃잎을 땅으로 돌려보내는 사람일 것이다. 아침 공부 후 새소리에 귀 기울이며 눈과 귀로만 움직이는 사람일 것이다. 이 느린 활달함이라니!

내가 아는 시인 박준은 시를 손에 쥔 채 오래 뒤척이는 사람이다. 지극해서 그러리라 생각한다. 가난한 언어를 일으켜 보고 뉘여도 봤다가 눈 감고 한꺼번에 놓치기도 하는 사람이다. 지극해서 그러리라 생각한다. 망설이고 물러서고 헤아리다 종이에 겨우 몇마디 내려놓는 사람이다. 마치 적은 돈을 저금하러 가는 사람처럼 공손히 시를 내려놓는 사람이다. 그가 한땀 한땀 수를 놓듯 그린 ‘오월의 사람’에게서 청아한 기운을 느낀다. 존재라기보다 기운에 가까운 사람. 빈 주머니를 뒤적이다 고개를 들면 저쪽에서 서성이다, 사라질 것 같은 사람.

어떤 시는 계속 이어서 쓰고 싶다. 오월의 너는 꽃 진다고 슬퍼하는 사람이 아니라 꽃 지니 잎 난다고 기뻐하는 사람이다. 오월의 너는 잎 뒤로 얼굴을 숨기는 사람이다. 오월의 너는….

 [농민신문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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