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 / 장만호
문득 그럴 때가 있다
숨을 몰아쉬며
막 죽어가는 새끼의 어린 배에
자신의 발바닥을 대보는
어미 코끼리의 모습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 밟아주느냐’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때가 있다
이제 다섯 살 먹은 조카아이가
문턱처럼 드러누운
칠순 노모의 허리를 잘근잘근
기우뚱거리며 그러나 아주 모질게 밟고 있다
(시집 ‘무서운 속도’, 랜덤하우스, 2008)
[시의 눈]
옛 어른들은 아랫목에 허리를 지지며 저녁을 보내곤 했지요. 뜨끈한 구들방에 손주나 조카가 횟대를 잡고 허리 밟도록 맡겼더랬습니다. 그 조막발은 약발이기도 했군요. ‘아, 시원타!’ 감탄합니다. ‘커서 뭐가 될려누?’ ‘한의사가 될래요’ ‘기특도 해라! 그때까지 내 살아있음 좋컷네. 이 할미 허리 고쳐줄 건겨?’ 손주는 대답 대신 ‘잘근잘근’ 더 모질게 공력을 들입니다. 아기코끼리 배를 엄마가 넓적한 발로 살짝 밟아줍니다. 무디지만 의사보다 나은 스킨십일 테지요. 문제는 소통이군요. 할머니는 손주와 정담에 아픈 허릴 잊곤 했지요. 한데, 이젠 밟아줄 손주가 없군요. 그래 노인병이란 고독의 한 증상일지 모릅니다. 첨단의술 다 동원해도 차도가 없어요. 눈길에 허리 삐끗한 이 저녁, 파스 찾다가 문득 손자의 앙증맞은 발바닥을 그리워합니다. 사실 그 발바닥은 워커신발 안에 숨어 아픈 휴전선 눈허리를 밟고 있는 중이랍니다. 장만호 시인은 1970년 무주 출생, 고려대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 200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등단했습니다. 그는 평범하기에 지나치기 쉬운 일을 먼저 소환함으로써 독자 호소력을 더 높이는 시인입니다.
<광부매일신문 노창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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