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실은 손수레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오후
집집마다 때 이른 저녁상이 차려지는
저마다의 수고로움이 펼쳐져 갈 때
골목 안 책방 앞에선
소란스러운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책을 빌려 갔으면 깨끗이 읽고 돌려줘야지 물에 젖은 책을 주면 어떡하니?"
고개를 숙인 어린 소년은
애써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기에
조그만 입에서는 애먼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아저씨,, 죄송해요
방 천장에 물이 새는 바람에..... “
그때 이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폐지 줍는 할머니였는데요
손수레에 두어 장 실린 상자를
접어 보이며 책방 주인에게 다가 간
할머니의 바지 고쟁이 깊은 곳에서 내어놓은 꼬깃꼬깃 접어진 천 원짜리 석 장과 고물상에서 받은 요구르트 한 병을 주인 아저씨의 손에 쥐여주며 말없이 아저씨의 눈만 바라봅니다
주인 아저씨는
긴 한숨만 연신 내뿜고선
요구르트를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고는
문을 닫고 들어가 버린 뒤
할머니는
빗물에 젖은 요구르트를
어린 소년의 손에 다시 쥐여주며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만 보고 있을때
소년은 빗물 같은 눈물을 지워내더니
“감사해요. 할머니“
라는
한마디 인사를 전하곤
소년은 빗물이 절벅거리는 골목길을
눈물과 함께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해맑은 햇살이
노을과 숨바꼭질을 하는 때늦은 오후
빗님이 멀리 여행을 가버린 그날도
할머니의 손수레는 동네 어귀를 돌아
책방 앞을 지나고 있을때 낯선 학생들이 줄을 서 있는데요
그중에
선생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오더니
“할머니 오늘 폐지 많이 주우셨어요?”
라고 묻습니다
무슨 말인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할머니는
선생님과 학생들을 번갈아 바라볼 뿐이였구요
"애들아!
헌책들 가져오렴 “
그 말에 학생들은
하나둘 할머니의 손수레로 몰려들어
가방에서 헌책들을 실어놓고 있는 사이 책방 문이 열리며 머쓱한 표정으로 양손에 헌책 두 묶음은 든 주인이 나오더니
“할머니 그땐 제가 죄송했습니다
이 책 오래된 건데 가져가시겠어요? “
그러고는
그때 그 소년을 바라보며
“그 책 2탄 나왔는데 빌려가렴
이 책방 문을 닫을 때까지는
대여료는 무료란다 “
얇은 주머니라
물질로 채워 주진 못해도
행복은 서로 돕고 나누는 것이기에
따뜻한 마음으로 채워줄
가슴 하나면 충분하다는 듯
저마다
행복 한 잎 베어 물고
집으로 돌아간 골목길에는
하루 몫을 다한
태양의 수고로움을 달래듯
노을은
행복 한 묶음이 실린 할머니의 손수레를 빨갛게 비춰주고 있었습니다.
[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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